INTRODUCTION

작품의 배경 및 개요

헨델의 <메시아>와 함께 대표적인 오라토리오로 뽑히는 걸작 중의 걸작인 하이든의 <천지창조>는 그의 만년의 완숙한 창작 시기인 1796년부터 1798년까지 약 2년에 걸쳐 작곡된 곡이다. 당시 하이든이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에서 열린 '헨델' 추모 음악회에 참석하여 <메시아>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아 오라토리오 작곡에 몰입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탄생되었다고 한다.

곡의 바탕이 된 가사는 영국의 여류시인 리드레이(Thomas Lidley)가 성서의 창세기와 존 밀턴(John Milton)의 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을 기본으로 헨델의 오라토리오로 대본화 했던 것인데, 이를 비엔나의 귀족이었으며 오라토리오 애호가였던 슈비텐(Gottfried Bernhard van Swieten) 남작이 독일어로 각색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영어로 된 대본 원본은 소재 불명이며 시인도 실제 인물인지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하이든의 자필악보는 현재 소재불명이나, 필사본과 하이든 자신의 스케치는 빈의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798년 4월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빈의 슈바르첸베르크 궁전에서 초연될 당시 “빛이 생겨나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겨났다”의 힘차고 감동적인 부분에 이르자 청중들이 일어나 하늘을 가리키며 “저 높은 곳에서”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이 곡에 대한 하이든의 열정과 믿음은 대단하였다.

"만일 곡이 그다지 어려움 없이 떠오르면 그것은 곧바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만일, 곡이 진전되지 않으면 나는 어디에서 은혜를 상실하는 실수를 했는지 찾아내려고 애씁니다. 그리고는 용서받았다고 느낄 때까지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위의 하이든의 회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천지창조>를 '창조자에 대한 숭배와 예배'에 영감을 주기 위하여 썼으며, 듣는 자로 하여금 '창조자의 자비와 전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틀 속'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작곡하였다.

"내가 <천지창조>를 작곡했을 때보다 더 경건한 때는 결코 없었다. 나는 매일같이 무릎을 꿇고 그 작품을 작곡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와 가까웠던 친구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트 그리징거도 ‘하이든은 자기가 양육 받았던 믿음에 충성스럽게 헌신하였다.’고 했다. 이들의 고백을 종합해 볼 때, 하이든은 모든 인간의 운명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아래 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선한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 보상을 하신다는 것과 모든 재능은 위로부터 내려온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강하게 확신한 작곡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만년에 종교 음악을 작곡하면서 가장 행복한 경험을 했었을 것이다. 하이든은 <천지창조>의 작곡을 통해 신앙심이 고양되었으며 신과의 영적인 교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작곡을 마칠 때마다 각 작품의 끝에다 "하나님께 영광을(Laus Deo)"이라고 써넣음으로써 진실한 그의 신앙심을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은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지휘자 카라얀이 <천지창조>를 녹음하던 때의 비극적인 일화가 세인들의 입에 회자될 만큼 여러 가지 후문을 낳고 있기도 하다.

카라얀이 1966년 2월, 최상의 솔리스트를 구성해서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녹음하려 했다. 군둘라 야노비츠(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메조 소프라노), 프리츠 분덜리히(테너),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바리톤) 등 당대 성악계를 주름 잡던 최고의 명창들이 모였었는데, 그 해 9월 독일 포츠하임 근교의 친구 집으로 휴가를 떠난 분덜리히가 밤 늦은 시간, 아내에게 전화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돌계단에 뒷머리를 부딪친 사고로 불과 서른여섯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카라얀은 그 후 2년 뒤 분덜리히가 부르지 못한 대목을 베르너 크렌에게 맡겨 음반을 완성했다고 한다.

<천지창조>는 헨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기악 부분에서는 하이든만의 뚜렷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의 작곡 활동으로 축적되어진 대위법적 기법과 화성적 기법을 원숙하게 동화시켜 특유의 친숙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그의 천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아리아는 화려하고 기교적인 이태리풍과 간결 소박한 매력이 있는 독일 민요풍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전곡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으로 3부 32곡으로 되어 있는데, 대천사 가브리엘(소프라노), 우리엘(테너), 라파엘(베이스)과 합창이 천지창조 과정을 노래하며, 총 연주 시간은 2시간 가량 소요된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제1부 창조이전의 혼돈 상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 과정 즉, 빛을 만드시고 하늘을 지으시고 물을 내시고 바다와 산, 강과 시냇가 등을 만드시고 다시 초목을 창조하신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1곡∼14곡).

c minor f의 강한 출현으로 무(無)와 유(有)를 가르는 경계선을 긋는 듯한 느낌, 3음과 5음이 없는 옥타브의 공허함, 느린 템포로 우주의 혼돈과 무질서를 보여주는 듯한 1곡(서곡)을 시작으로 빛의 생성(2곡), 마귀들과 어둠의 권세가 흑암으로 떨어지는 장면(3곡)에서 돋보이는 반음계의 연속 하행진행, 창공과 물의 구별을 알리는 4곡에 이어 땅을 만드신 하나님의 업적을 라파엘이 알리는 장면(7곡)을 지나 넷째 날 달과 별들을 만드신 장면(13곡)에 이르고, 이어 합창과 천사들의 3중창이 어우러져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14곡)으로 끝맺는다.

7곡을 들으며 상,하행 도약과 스타카토의 진행에서 마치 언덕과 바위가 드러나 봉우리를 형성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으며, 11번 합창의 멜리스마를 통해 찬란하게 빛나는 창조의 아름다움, 13곡의 트레몰로를 통해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악곡에 대한 감상의 미와 향기는 점점 고조된다.

제2부 지상의 동물
물고기와 새들을 창조하는 제5일째부터 제6일에 일어난 창조의 경이로움을 표현하고 있다(15곡∼26곡). 다섯째 날에는 짐승들을 창조하는데 사자, 범 등 각 짐승들의 특성이 익살스런 음악적 표현으로 나타나며, 여섯째 날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는 장면, 그리고 모든 것이 주를 우러러 보며 땅에서는 웅대한 할렐루야의 합창이 이어진다.

가브리엘의 아리아를 들으며 포르잔도와 스타카토로 움직이는 리듬, 붓점이 있는 짧은 음가와 셋잇단음표, 꾸밈음과 트릴 연주를 통해 다섯째 날 독수리와 종달새, 꾀꼬리 등 하늘에 떼 지어 나는 새들의 무리를 떠올릴 수 있으며(16곡), 여섯째 날 짐승과 가축이 창조되어 움직이는 모습을 짧은 음표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조성변화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이어서 느린 안단테의 아리아로 창조된 인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우리엘의 아리아(24곡)에 이어, 세상만물이 주님을 의지하면 평화롭다는 가브리엘과 우리엘의 노래, 세상만물이 주님을 등지면 숨이 끊어진다는 두려움을 노래한 라파엘의 노래, 다시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만물의 생동이 지속됨을 나타내는 3중창과 대위적 진행과 화성적 진행이 조화를 이루는 푸가 형식의 아름다움이 빼어난 알렐루야로 창조역사의 장대한 역사는 맺어진다(26곡).

제3부 아담과 하와의 창조,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의 크신 위엄을 찬양(27곡 ~ 32곡
플룻의 느린 움직임과 계속되는 장식음과 상행음으로 서서히 밝아오는 아름다운 일곱째 날 아침이 연상되는 우리엘의 서창(27곡)에 이어 아담과 이브의 하나님의 크심을 경외하는 찬양(28곡), 아담과 이브의 사랑의 노래(30곡)가 이어지는데, 두 사람이 교창하는 부분에서 하이든 특유의 재치와 유머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8곡에서 아담과 이브의 이중창의 서로 메기고 받는 형식에 이어 영원한 신앙을 맹세하는 대규모의 합창으로 발전하는 동안 연기와 안개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현악기가 16분음표의 스타카토로 연주되어지는데, 이 16분음표가 하나의 성부에서 시작해서 계석 늘어나는 모습으로 진행되어 자욱해지는 연기와 안개의 신비감을 더해 주는 듯한 느낌을 맛볼 수 있다.

또 이어지는 잦은 조바꿈 진행에 의한 합창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창조되어진 피조물들이 각기 개성대로 다양하게 창조주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 32곡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종합하는 곡으로, 조성의 변화가 복잡하지 않게 정돈된 진행을 하고 있으며, 장대한 합창과 장식적이고 아름다운 믿음을 선보이는 솔로들의 화려한 아멘의 화답에 이어 코다 부분에서 주제를 변형시키며 유니즌과 지속음으로 조성의 확립과 절정의 순간을 구축하며 힘찬 아멘의 부르짖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