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haikovsky

Symphony No.6 in b minor Op.74 (Pathetique)

Evgeny Mravinsky (Conductor)
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

1960/11 Stereo
Musikverein, Grosser Saal, Wien

절망의 극치를 보여주는 피날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

  · 1893년 작곡.
  ·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본인의 지휘로 초연하고 9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 연주시간 약 46분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b단조 op.74》에는 ‘비창’(Pathetique)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번호가 붙은 교향곡 중에서 표제를 지닌 것은 1번과 6번입니다. 《교향곡 1번 g단조》에는 ‘겨울날의 환상’(Winter Daydreams)라는 표제가 붙어 있지요. ‘겨울날의 몽상’이라고도 번역합니다.

6번에 붙어 있는 ‘비창’은 이 곡의 초연(1893년) 직후, 차이코프스키의 동생 모데스트가 지은 이름입니다. 모데스트는 차이코프스키의 매니저와도 같은 역할을 했지요. 우유부단하고 내향적이었던 차이코프스키는 동생 모데스트에게 적잖이 의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형과 동생이 거꾸로 된 것이지요.

초연(1893년) 직후에 차이코프스키가 모데스트에게 표제를 붙이고 싶다는 의향을 말하자, 모데스트는 ‘비극적’이라는 표제가 어떻겠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그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잠시 생각을 굴린 모데스트가 “그러면 ‘파테티체스키’(러시아말로 ‘비창’)는 어떤가요?”고 하자 “그래 모디(동생의 애칭), 좋구나!”라며 동의했다고 하지요.

이 유명한 에피소드는 모데스트가 쓴 차이코프스키 전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정확한 진위를 판명하기에는 좀 애매합니다.

1번과 6번 외에도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에 제목이 붙는 경우들이 더러 있습니다. 예컨대 2번 ‘소러시아’, 3번 ‘폴란드’가 그렇지요. 이 이름들은 공식적인 표제가 아니라 그저 ‘별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출판된 악보에 기록된 공식 표제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2번의 경우에는 1악장과 4악장에서 우크라이나의 민요 선율이 사용되고 있어서 ‘소러시아’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20세기 초반까지 소러시아로 통칭됐지요. 또 3번은 마지막 5악장에 폴란드의 춤곡인 폴로네즈가 등장해서 ‘폴란드’라는 별칭을 얻게 됐습니다.

6번 ‘비창’은 차이코프스키가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해에 작곡됐지요. 그야말로 절망의 심연을 더듬는, 그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곡입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레퀴엠’을 인용하고 있는 1악장은 물론이거니와, 느리고 우울하게 소멸하는 4악장도 절망의 극치를 보여주는 피날레입니다.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삶과 죽음, 그것이야말로 ‘비창’이 묘사하고 있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말하자면 차이코프스키의 비관적 인생론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교향곡입니다.

물론 앞에서 거론했던 4번과 5번에서도 차이코프스키의 비관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6번만큼 완전한 비관의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지요. 예컨대 5번만 해도 차이코프스키의 어떤 동경과 그리움 같은 것이 음악 속에 담겨 있습니다. 특히 3악장에서는 따뜻함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전해집니다. 마지막 4악장에서도 완벽한 절망으로 추락하지 못하고 절충적인 피날레를 선택하지요. 하지만 오늘 들을 6번의 마지막 악장은 완전한 비관주의를 드러냅니다.

이미 말했듯이 차이코프스키는 연주여행이 아주 잦았는데요, 1892년 말부터 다음해 초에 걸쳐 서유럽 여행을 다녀온 직후, 모스크바 북서쪽의 도시 클린((Klin)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교향곡 6번》을 스케치합니다. 그해893년 2월에 동생 아나톨리(모데스트와 쌍둥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새로운 곡을 쓰고 있단다. 이 곡은 틀림없이 내 최고의 작품이 될 거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4월 무렵에 교향곡 6번의 스케치를 끝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할 수가 없었지요. 마지막 피아노 작품인 ‘18개의 소품’, 또 최후의 가곡집인 ‘6개의 로망스’를 작곡하느라고 《교향곡 6번》에서 잠시 손을 놓습니다. 이어서 영국으로 연주여행을 떠나는데요, 이것이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그는 런던에서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산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교향곡 4번》을 연주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지요. 클린의 집으로 돌아온 것은 거의 8월에 다다라서였습니다. 그는 얼마 후 여동생 알렉산드라의 아들 다비도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 페이지를 쓰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단다”라면서 《교향곡 6번》을 마무리하기가 영 만만치 않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조카 블라드미르 다비도프.
1892년 차이코프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 조카 다비도프도 차이코프스키의 생애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인데요, 자식이 없었던 차이코프스키는 그를 매우 아꼈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두 사람이 동성애 관계였다는 말도 있지만, 이 역시 진위가 불분명한 설입니다. 어쨌든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을 사랑하는 조카 다비도프에게 헌정하지요. 이 조카도 삼촌이 세상을 떠나고 13년 뒤에 자살로 생을 마칩니다.

초연은 같은 해 10월 28일, 페테르부르크 러시아음악협회의 연주회에서 차이코프스키가 직접 지휘해 이뤄집니다. 그리고 9일 뒤에 차이코프스키는 음악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의문의 죽음을 맞지요. 애초에 발표된 사인은 콜레라였습니다. 끓이지 않은 물을 마셨다가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다는 것이 죽음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콜레라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것은 사실이지요. 러시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병으로 쓰러졌습니다. 하지만 왠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습니다. 물 한 잔을 마시고 몇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어딘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1978년에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을 둘러싼 다른 사연이 제기돼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킵니다. 클린 시의 차이코프스키 박물관에서 일하던 소련의 음악학자 오를로바가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은 비소 중독에 따른 자살이라고 발표했던 것이지요.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동성애자였던 차이코프스키가 한 귀족의 손자와 연인 관계로 지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귀족이 차이코프스키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투서를 썼다는 것이지요. 그 투서를 전달받은 사람이 다름 아닌 차이코프스키의 법률학교 동창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법률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동창들을 소집해 비밀법정을 열었고, 그 결정에 따라 차이코프스키가 자살하도록 압박했다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던, 그것을 엄청난 불명에로 여겼던 당시의 상황에 비춰 보자면 개연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오늘날에는 콜레라 설보다 오히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인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하나의 설로 남아 있을 뿐이지요.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남아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묘소.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로 네프스카 수도원에 자리해 있다.

어쨌든 교향곡 6번 ‘비창’은 그 자체의 비극성뿐 아니라 차이코프스키의 실제 죽음과 결부되면서 ‘마지막 비극’이라는 신화성을 한층 키운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차이코프스키가 실제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이 곡을 작곡했을 리는 없었겠지요.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교향곡 6번》에 차이코프스키가 느꼈을 절망이 짙게 드리워진 것은 분명합니다.

1악장 서주의 아다지오 선율, 콘트라베이스가 저음으로 연주하는 침울한 멜로디부터 그렇습니다. 뒤 따라 파곳이 흐느끼듯이 연주되다가 현악기가 이어받습니다. 이 서주를 그대로 이어받아 리드미컬한 첫번째 주제가 펼쳐집니다. 점점 고조되면서 불안감을 증폭시키지요. 잠시 후 템포가 확연히 느려지면서 현악기들이 애절하게 연주하는 두번째 주제가 제시됩니다. 클라리넷, 파곳이 그것을 이어받습니다. 그러다가 1악장 중간 지점인 발전부에 들어서면 갑자기 음량이 고조되면서 리듬이 강력해지지요. 금관이 격렬하게 포효하면서 콘트라스트를 고조시킵니다. 이렇듯이 6번 ‘비창’에는 피아니시모와 포르티시모의 극단적인 대비가 등장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들으면서 오디오의 볼륨을 조절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종결부에 들어서면 현악기들이 피치카토를 둥둥 울리는 가운데, 관악기들의 부드럽고 쓸쓸한 선율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2악장은 5분의 4박자로 이뤄진 비틀거리는 춤입니다. 러시아 민요에 빈번히 등장하는 리듬입니다. 아름다운 노래의 느낌이 물씬한 선율이 엇박자의 춤처럼 전개됩니다. 교향곡 5번의 3악장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차이코프스키의 매력이자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발레의 분위기를 풍기는 악장입니다. 하지만 이 춤은 뭔가 불안한 느낌을 내포한 채 흘러갑니다. 특히 종결부가 그렇습니다. 스르르 사라지는 느낌으로 끝납니다.

3악장은 조잘대며 시작합니다. 약간 장난을 치는 듯한 스케르초 풍의 악장인데, 2악장과 마찬가지로 춤곡의 분위기가 두드러집니다. 3악장의 주제는 차이코프스키가 사랑했던 이탈리아 남부의 타란텔라 무곡을 차용하고 있는 까닭에 ‘타란텔라 주제’라고도 불립니다. 종결부에서는 행진곡 풍으로 달려가다가 팀파니와 관악기가 어울려 명확하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비창’의 4개 악장 중에서 유일하게 뚜렷한 종지부를 지닌 악장입니다.

이 곡은 전체적으로 느린 1악장, 빠른 2악장과 3악장, 그리고 다시 느린 4악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교향곡의 4악장은 빠른 템포로 펼쳐지는 법이지만, 차이코프스키는 완전히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비창’의 4악장은 아주 느릿하게 문을 열면서 앞의 두 악장과 확연한 대비를 보여줍니다. 앞서 언급했던 차이코프스키의 비관적 운명론이 집약돼 있는 악장입니다. 두 개의 주제 선율은 모두 밑으로 하강하면서 비통한 분위기를 펼칩니다. 슬프게 울고 있는 것 같은 첫번째 주제가 여리게 흘러나오다가 관현악 총주로 한차례 치솟아 오릅니다. 그랬다가 다시 꺼질 듯이 가라앉습니다. 호른의 뒤를 따라 현악기들이 여리게 연주하는 두번째 주제도 흐느끼는 듯한 클라이맥스를 구축했다가 역시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우울함을 뛰어넘어 낙담과 절망, 체념을 느끼게 하는 악장입니다. 힘없이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은 더욱 그렇습니다.

구분선

추천음반

1.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1960년| DG

앞서 《교향곡 5번》에서도 추천했던 음반이다. 지휘자의 카리스마와 악단의 호응이 매우 뛰어나다. 호쾌함과 섬세함이 동시에 살아 있다. 5번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역사적 녹음의 반열에 놓을 만한 음반이다.

5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막강한 음악적 감흥을 전해준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걸작 교향곡 4번, 5번, 6번이 2장의 CD에 담겼다. 소장 가치가 충분한 필청반이다.
2.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1975년 | DG

이 역시도 앞에서도 추천했던 음반이다. 므리빈스키의 레닌그라드 필하모닉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연주라고 할 수 있다. 오디오적 쾌감이 느껴지는 화려하고 세련된 음향, 화사한 음색을 추구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러시아적 흥취가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연주는 아니지만 카라얀의 정련된 사운드를 맛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반이다. 역시 4번, 5번, 6번을 2장의 CD에 수록했다.
3. 발레르 게르기예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2004년 | Decca

비교적 근래의 녹음 중에서는 이 음반을 권한다. 러시아 출신의 게르기예프는 자신의 음악적 본거지인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도 같은 곡을 음반으로 내놓은 바 있다. 1990년대에 발매된 그 음반도 좋다. 하지만 최근에는 구하기가 다소 어렵다. 이 지면에서는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녹음을 권한다.
2000년대 이후, 러시아 출신의 지휘자가 녹음한 《비창》 중에서는 비하일 플레트네프가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2010년 녹음도 차분하게 정제된 사운드로 호평을 받는다. 이에 견주자면 게르기예프는 한층 역동적인 음악을 펼쳐 놓는다. 음색과 템포 등에서 극적인 대비를 구현하고 있는, 매우 출렁거리는 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