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하이든이 모르친 백작의 악사로 일했다고 잠깐 언급했는데, 아쉽게도 백작의 집안이 기울면서 하이든을 계속 고용할 수 없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백수가 된 하이든은 또 한 번 길에 나앉을 뻔했지만,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 공작을 소개받아 빠른 이직에 성공해요.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헝가리 대표 작곡가 리스트의 아버지가 일했을 정도로(하이든이 죽은 뒤 리스트가 출생하기 때문에 두 거장이 만나지는 못합니다.) 꽤 이름 있는 집안이었어요. 하이든은 29세부터 58세(1761~1790)까지 에스테르하지의 악사로 곡을 씁니다. 거의 30년을 근속한 셈이죠.
전속 악사라고 하면 뭔가 낮은 계급의 시종 같은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나요? “날 위해 지금부터 바이올린을 쉬지 않고 연주하거라.” 뭐 이런 것처럼요. 실제로 당시 귀족들은 음악가를 딴따라 취급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유흥을 위해서나 다른 귀족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악사를 고용하곤 했거든요. 하지만 하이든은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그의 창작 활동을 제한하거나 닦달하지 않았어요. 좋은 곡을 쓸 수 있게 금전적으로 충분히 하이든을 지원해 줍니다. 그래서 30년이나 근속한 걸까요? 역시 예나 지금이나 돈 잘 주고, 잘 쉬게 해주는 사장님의 최고인 것은 불변의 법칙인가 봐요.
공작 가문 덕분에 많은 곡을 자유롭게 쓸 수 있던 하이든에게 유일하게 피곤한 미션 하나가 있었습니다. 처음 공작 가문에 들어왔을 때, 파울 안톤 공이 하이든에게 아침, 정오, 저녁을 주제로 음악을 써보라고 한 거예요. 시간에 맞춰 각각 다른 음악을 듣고 싶었던 거죠.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24시간을 주제로 곡을 쓰라고 하면 어떤 것 같나요? 저였다면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넘어선 86,400초 같은 걸 만들어서 24시간 가만히 있는 곡을 쓰고… 아마 쫓겨났을 거예요.
하지만 하이든은 <다작왕>답게 아침, 정오, 저녁을 주제로 3곡의 교향곡을 무사히 써냈고, 이 미션 곡이 하이든의 초기 교향곡이 됩니다. 여러분도 각각의 곡이 그 시간에 어울리는지 떠올리며 감상해보세요.
추천곡 : 『아침 교향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