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태어났고 이탈리아에서 유학했지만, 헨델이 생을 마감한 곳은 영국이었습니다. 헨델의 영국 생활도 마냥 편안하지는 못했어요. 왕실 상임 작곡가에 임하면서 온갖 권력 암투에 휘말렸고 왕권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도 겪게 됩니다. 게다가 유럽 전역에서 오페라의 인기가 서서히 식으면서 헨델의 인기도 같이 사그라들어요. 전성기에서 한발 물러난 헨델은 옛날 독일에서 공부한 경험을 살려 다시 오라토리오를 작곡하는데, 이때 앞에서 소개한 대작 『메시아』가 탄생합니다.

『메시아』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해하려면 음악적 해석부터 시작해야겠지만, 복잡한 이론을 차치하고 공연 성적만 보더라도 『메시아』의 놀라운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공연은 초연 이후 반짝인기를 끌다 다른 작품에 밀려 서서히 공연 횟수를 줄이면서 막을 내려요. 하지만 『메시아』는 지금도 기독교 사순절과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마다 매번 공연장에 오르는 인기 레퍼토리입니다. 그러니까 1742년 4월 13일 첫 공연 후, 지금까지 단 1년도 멈추지 않고 연주된 셈이죠. 내가 남긴 작품이 몇백 년이 지나도 쉬지 않고 울려 퍼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자유로운 예술가로 영원히 살 것 같던 헨델은 말년에 병으로 고생합니다. 52세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오른손이 마비되고, 14년 뒤인 1751년부터는 왼쪽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해요. 이때 바흐를 수술했던 돌팔이 의사 존 테일러가 등장합니다. 헨델 역시 존 테일러에게 백내장 수술을 받다가 눈이 완전히 멀어버립니다. 그럼에도 8년이나 창작활동을 더 했다고 해요. 오른손이 마비되었을 때는 다른 사람에게 곡을 받아쓰게 하면서까지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니, 음악에 대한 헨델의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내도 자식도 없이 혼자 보낸 헨델의 말년은 쓸쓸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후대 음악인들을 돕기 위해 <가난한 음악가 구제회>에 끊임없이 후원하고, 영국 자선단체이자 보육원인 파운들링에 『메시아』 악보 원본과 남은 유산 전부를 기부하며 뜻깊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성공한 예술가는 많지만 존경받는 예술가가 되기는 쉽지 않죠. 오늘날 예술가가 대중에게 전해야 할 선한 영향력을 제대로 보여준 사람이 바로 헨델이 아닐까요? 헨델의 마지막을 함께한 영국 국민들은 아직도 그를 영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며 존경하고 있어요.

어쩌면 죽은 사람에게 ‘자신이 어떻게 기억되는가?’라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득하고 긴 죽음을 초월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내 이름이 계속 불린다면, 그것은 사는 것만큼이나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으세요?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는 후대의 누군가에게 올곧은 모양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요?

헨델이 살아 있을 당시, 영국 왕실이 가장 사랑한 곡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할게요.

추천곡 V : 영국 왕 조지 2세의 요청으로 작곡된 『왕궁의 불꽃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