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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자 가야금 산조는 그 어머니 성금연에게서 전승된 것이다. 성금연은 이 신조를 박상근에게 배워 후세에 전한 것으로 학계에 알려져 있으나 성금연은 박상근보다는 안기옥을 그 스승으로 꼽고 있다.

 

   지성자가 전하는 성금연류의 가야금 산조는 성금연이 칠십사년에 하와이로 이민해 간 뒤에 이미 짜여져 있던 가락에 많은 부분을 새로이 짜 넣어서 연주 시간이 육십분쯤 되는 방대한 것인데, 이 음반에 담긴 것은 거기에서 사십팔분쯤 되는 분량을 발췌하여 연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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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자(1945 ~ 서울출생)

 

지성자는 지영희, 성금연의 딸로, 어머니 성금연류의 가야금을 이어받고 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음악 소리를 듣고 세상에 나왔다. 세상에 나오기도 전부터 예인의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를 이어 음악을 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만큼 세상은 국악인들에게 인색했고 우리 음악은 그저 그런 것쯤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전통음악에 대한 지영희 ・ 성금연, 두 예인의 신념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음악 하는 사람들이 천대받던 시절이었고 우리 문화나 음악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그리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좀 버거웠던 순간도 있었죠. 하지만 부모님께서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고 그런 부모님의 말씀 덕에 저 역시 자부심을 가지고 음악을 할 수 있었어요.”

 

    두 예인의 굳은 의지가 ‘지성자’라는 또 한 명의 예인을 만든 것이다. 처음엔 소리부터 시작했고 그 후엔 춤을 배웠다. 가야금을 제대로 무릎에 얹은 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비로소, 일본에서 마주한 우리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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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자는 동경예술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일본 학생들에게 가야금을 비롯한 민속악을 10년 넘게 가르쳤다. 

 

   지성자에게 지영희와 성금연, 이 두 예인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는 부모이면서 스승이었고 시대를 대표했던 예인들 앞에서 늘 자신의 부족함이 부담으로 다가왔었다고 고백한다. 결혼 이후 일본에서 오랜 기간 머물면서 비로소 우리 음악에 대한 진한 애정과 조우하게 되는데, 자신을 내려놓고 몰두한 삶을 살아가는 일본의 장인을 보면서 대를 이어 우리 음악을 지키겠다는 사명감 또한 강렬하게 끓어올랐다. 그 시간 동안 지성자는 하야시 에데스, 다카다 미도리 등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여러 뮤지션과 함께 다양한 공연 활동을 하는 한편, 동경예술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일본 학생들에게 가야금을 비롯한 민속악을 10년 넘게 가르쳤다. 

 

   “우리 음악의 모든 걸 품고 있는 것이 바로 민요란 생각이 들어요. 민요에는 우리 언어가 있고 그 언어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생각이 담겨져 있어요. 또 아름다운 한국의 선율과 그 선율을 지탱하는 장단도 들어있죠. 예전 선생님들은 민요를 따로 배우기보단 자연스럽게 체득했었는데 지금 세대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워요.” 

 

 

눈으로 보는 음악이 아닌 귀로 익히는 음악

 

   지성자는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소리를 가르친다. 그리고 장단을 배우게 하고 마지막 순간에 가야금을 무릎에 얹는다. 

 

   언제부턴가 ‘악・가・무 일체’라는 표현을 쓰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대학의 학과가 세분화되었고 학생들 역시 각각 분리된 음악체계 안에서 입문하기 때문이다.

 

   “음 하나가 찰나에 소리가 되고, 춤이 되고 그리고 악기가 되고, 박이 되는 건데……. 요즘엔 그렇게 공부하질 않아요. 춤추는 학생들도 장단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동작을 할 때 딱딱하게 숫자만 세더라고요.” 

 

   춤뿐만 아니라 악기를 배우는 학생들 역시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오선보로 음을 보고 분석하면서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레 시각적인 음악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시각적인 음악으로는 우리 음악이 가지고 있는 호흡이나 감정을 모두 담아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구음이든 악기든 청각으로 그 소리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지성자는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소리를 가르친다. 그리고 장단을 배우게 하고 마지막 순간에 가야금을 무릎에 얹는다. 소리와 장단을 잘 익히면 가야금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성자의 남다른 교수법은 악보나 영상으로 음악을 배우는 것이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 조금 낯선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보다 올곧은 소리를 간직한 비결이 ‘청각소리’에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3대를 이어온 음악,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는 성금연-지성자-김보경 등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는 성금연을 시작으로 벌써 3대째 그 가락이 이어지고 있다.(성금연-지성자-김보경)

 

   “대를 이어 어머니의 음악을 남기려던 꿈은 반쯤 성공을 이룬 것 같아요. 딸까지 3대를 이었으니까요. 앞으로 손녀까지 이 음악을 받아서 4대로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사실 대를 이어 음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승의 소리를 그대로 흉내 낸다고 해서 그 소리가 온전히 전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음악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정신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생각과 고민을 함께 담아야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을 완성할 수 있다. 그래서 늘 책임감을 가지고 연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음악은 그림이나 글처럼 과거에 완성된 작품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그 음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해요.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이 음악이 대를 잇는다는 개념을 넘어서, ‘과거’와 ‘지금’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까지 연결하는 이음줄이 됐으면 좋겠어요.”

 

 

현침의 온도만큼 답을 주는 악기, 가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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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금과 한평생 살아온 예인에게 이 악기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가야금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악기임에도 참 어수룩한 매력이 있어요. 나름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죠. 더 깊게 들어가면, 솔직하면서도 냉정한 답을 주는 악기가 가야금이에요. 내가 순서만 외워서 연주하는지, 내 마음을 얼마나 담아 울리는지 또 얼마나 오랜 시간 무릎 위에 두고 고민했는지 다 알고 있어요. 매번 제 마음에 따라 다른 답을 들려주거든요.”

 

   지성자가 생각하는 가야금은 조상의 지혜를 담아낸, 합리적인 악기다.

   지성자의 음악은 스스로 얻은 끊임없는 고민의 결과이면서 자연의 이치를 담은 가야금과의 심도 깊은 대화이다.  그리고 오늘, 이곳 한옥에서 또 한 번의 대화를 시작하려 한다. 

 

   “만들어진 것 중에 가장 좋은 걸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그 시간에만 존재하는 소리가 바로 음악이에요. 그래서 그만큼 새로운 무대가 기다려지는 것 같아요. 한옥에서 함께 나눌 음악으로 모두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