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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마라 가야금아 / 안향련


울어 울어 우는구나 가야금 열두 줄이
한 줄을 퉁겨보니 님의 모습 떠오르고
두 줄을 퉁겨보니 님의 소식 그립구나
울지마라 가야금아 너마저 날 울리면
애끓는 이내간장 구비구비 눈물진다

 

꿈아 꿈아 깨지 마라 푸른 꿈 나의 꿈아
세 줄을 퉁겨보니 님의 입술 새로웁고
열두 줄 퉁겨보니 설움만이 북받치네
울지마라 가야금아 너마저 날 울리면
설마설마 기다리는 내 청춘이 서글프다

 

안향련 명창  비운의 여류명창  안향련  
천재는 단명하다. 일제강점기에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고 '사의 찬미'를 노래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그러했고,  네가 나를 배반하고 떠난다 하여도 그것은 순전히 내 탓이다,  그래서 진달래 꽃잎이 될 터이니 나를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고 민족의 한스런 정서를 노래한 김소월이 그러하다.


우리 판소리계를 살펴보면 윤심덕이나 김소월처럼 요절한 명창이 있다.
바로 뜨거운 사랑에 몸부림치다 비운의 삶을 마감한 불세출의 여류 명창 안향련이다.


빼어난 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의 윤심덕이 희곡작가인 김 아무개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져 결국 현해탄에서 몸을 던져 동반 자살했다면,  아름다운 자태와 타고난 천구성에 수리성으로 일세를 풍미하던 안향련 역시 어느 화가와 못다 이룬 사랑을비관하여 지난 1981년 12월의 어느 날 수면제를 많이 먹고 서른일곱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안향련은 우연히도 임방울 명창과 같은 광주 송정리에서 지난 1944년 태어났다. 명창 정응민,  정권진,  장영찬에게서 판소리를 배웠으며,  10여년 전 세상을 뜬 김소희 명창의 수제자였는데,  제3회 남원명창대회에서 조상현,  성창순에 이어 장원을 한 소리꾼이다. 스승인 김소희 명창은 생전에 안향련을 '나를 능가하는 명창'이라고 추켜세웠다.


이는 김소희 명창의 겸손한 표현일 수도 있으나 그 정도로 그녀의 타고난 천구성(애원성이 가미된 맑고 고운 소리)과 아무 사설에나 곡만 붙이면 소리가 될 정도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제자 안향련이 죽자 김소희 명창은 너무나 애통하여 진도씻김굿을 해주었다. 좋은 곳으로 가서 소리의 신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굿이 절정에 이르자 김소희를 비롯한 명창들이 슬픔에 복받쳐서 굿이 엉망진창 지경까지 갔었다고 한다.

 
일부 평자는 "남자 명창은 임방울,  여자 명창은 안향련"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녀는 타고난 천구성에 후천적 노력인 수리성이 조화를 이룬 명창이었으므로 동양방송(TBC)의 한 프로그램이 발굴·지원하면서 1970년대 각 방송국을 섭렵해 이름을 떨쳤다.


안향련을 연구한 경기대 국문과 김헌선 교수는 "예술가는 적당히 불우해야 한다. 타고난 조건이 그러할 수도 있고,  스스로 그런 길을 선택해서 갈 수도 있다. 사치와 향락,  그리고 돈에 안주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기질을 알아주는 남자를 만나서 마음 속 깊이 사랑을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안향련의 판소리 예술이 훌륭했던 것은 그러한 불행한 조건을 서슴지 않고 받아들여 예술을 위해 통째로 바쳤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예술가는 춥고 배고프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감각적이고 강렬하여 그 자체가 병이 되어 괴로워한다. 만약 예술가가 배부르고 등 따시면 굳이 무엇 때문에 예술을 하겠는가 예민하고도 쉽게 동화 되니까 향락에 빠져 쾌락주의자로 흐를 소지가 많다. 뛰어난 예술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예술계에 커다란 손실이다. 그러나 그 불우한 삶,  가슴에 맺힌 한이 뛰어난 예술을 꽃피우게 한 원동력이었다.

 
판소리하는 분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심청가에 휘말리면 죽는다'는 속설이 그것이다.
안향련은 처절한 심청가를 기가 막히게 뽑아냈다. 그래서그녀는 결국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림받은 좌절과 슬픔이 한이 되어 일찍 생을 마감한 안향련이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가 소리를계속할 수 있도록 매니저를 자처하고 싶다.


서른일곱의 한창 나이에 요절한 그녀의 소리는 우리를 슬프고도 행복하게 한다.

 

글출처 : 이평선의 고향 전라우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