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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섭은 1944년 음력 12월 19일(호적:8월 20일) 전남 진도에서 부친 박동일과 모친 김정심 사이의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박진섭의 조부는 박근수이며 대금산조의 창시자 박종기는 박진섭의 할아버지뻘이고 진도 씻김굿 인간문화재 박병천은 박진섭의 형제뻘이 된다. 박진섭의 부친 박동일은 진도 토박이로서 한학과 서예에 능했는데 1998년 91세로 작고했다. 명창 조상현이 어려서 박동일에게 한문과 서예를 배웠다.


박진섭의 모친 김정심 역시 진도 토박이다. 김정심은 1999년 현재 89세로 서울에서 살고 있으며 <강강술래>, <육자배기>, <흥타령>, <진도아리랑> 등 남도민요 전반에 걸쳐 두루 능하여 김소희, 박초월, 박귀희 등 옛 남도창 인간문화재들이 극찬을 했는데 후손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문화재 지정 권유를 몇차례나 거부했다.


박진섭의 아내와 형, 누나 2명, 여동생 2명, 아들과 딸(3남 1녀)은 국악을 좋아하지만 취미일 뿐이지 직업인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박진섭은 어려서 어머니 김정심이 부르는 민요를 많이 듣고 자라서 자연히 그 소리들을 익히게 되었고 바로 그렇게 말 배우듯이 자연스럽게 체득한 소리를 본 음반에 남긴 것이다.


박진섭은 여기에 녹음된 <육자배기>, <흥타령>, <진도아리랑>을 비롯해서 농요, 상여소리, 고사소리, 판소리, 풍물(장고 북 꽹과리 징), 씻김굿에 능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국악이 너무 좋아 이렇게 두루 학습을 하게 됐는데 이에 대한 부친의 반대가 완강하여 어려서 매를 많이 맞았다.


박진섭은 7세부터 10년 넘게 한을령한테 진도 씻김굿을 사사했다. 한을령은 진도 토박이 세습무로서 부인과 함께 씻김굿 일을 했는데 지금 살아있다면 90여세 되는 나이며 서울서 몇년 전에 작고한 판소리 명창 한순자의 부친이다. 한순자는 본명이 한명숙으로서 박록주 등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박진섭은 10대 때 3년간 공대일한테 <편시춘>, <초로인생> 등 단가 4곡과 춘향가 전바탕을 배웠다. 그리고 10대 때 3년간 정광수에게 단가 <백발가>와 <천생아재>, 심청가 전바탕을 익혔다. 또 10대 때 4년간 김창봉 문하에서 단가 <백발가>(젊어 청춘), 수궁가 등을 사사했다. 김창봉은 진도 사람이며 지금 생존시 약 85세의 나이인데 작고한지가 10년이 넘었다 한다.(광주에서 타계함) 김창봉은 명창 신치선의 수제자로서 신영희(신치선의 딸, 김소희제 판소리 인간문화재 후보)를 업어서 키웠다.


박진섭은 10대 때 6년간 박초월 문하에 들어가 단가 <백발가>, <만고강산>, <추월강산>, 춘향가 중 <옥중가>, 수궁가와 흥보가 전바탕을 배웠다. 그리고 10대 때 3년간 정응민에게 단가 <이산 저산>과 춘향가 전바탕을 익혔고 나중에 성우향을 찾아가서 그 정응민제 춘향가를 재학습했다 한다. 한편 박진섭은 10대 때부터 20대까지 오랫동안 계수남 문하에 들어가 대중가요를 익힌 바 있다.


박진섭은 현재 전남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거주하면서 민요, 판소리, 풍물, 씻김굿 등의 국악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현재 그와 함께 씻김굿을 하는 이는 인간문화재 김대례, 박병천, 한영화(한을령의 아들) 등이고 채정례, 함인천 일행과는 굿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이 글은 고 박병천, 고 김대례 작고 이전에 작성된 것 같습니다.


박진섭은 근래에 보기 드문 남자 명창으로서 진도 씻김굿 특유의 목구성과 향토 전래민요의 풀내음, 전문 소리꾼의 세련된 판소리 성음 등을 두루 겸비한 매우 주목할 만한 명창으로 평가된다.

 

글/노재명(국악기록보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