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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클레이더만(Richard Clayderman, 1953 ~ )

 

 

1976년 작곡가 폴 드 세네빌과 함께 미셀 폴라레프, 달리다, 클로드 프랑소와 등 프랑스의 유명 샹송 가수들의 앨범을 제작한 올리비아 투생은 피아노 연주자를 찾고 있었다.

 

그들이 찾는 피아노 연주자는 단순한 세션을 위한 연주자는 아니었다. 한 해 전 그들은 20대 초반의 트럼펫 연주자 쟝 클로드 보렐리의 앨범 [Dolannes Melodie]를 제작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었다.

 

이 경험을 살려 이번에는 피아노 연주자를 발굴하려는 계획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 준비된 곡은 폴 드 세네빌이 막 태어난 자신의 딸을 위해 만든 ‘Ballade Pour Adeline’.

올리비아 투생은 20여명의 피아노 연주자들을 오디션했다.

 

그 중에는 23살의 청년 필립 파제스가 있었다. 일찍이 피아노 연주를 시작해 12살의 나이에 프랑스의 국립 음악원(Conservatoire De Paris)에 입학해 1등으로 졸업했다는 이 청년은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의 꿈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병원비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중 음악 세션 연주자의 삶을 시작한 참이었다.

올리비아 투생은 필립 파제스가 연주한‘Ballade Pour Adeline’가 마음에 들었다. 연주도 훌륭한데다가 얼굴도 잘 생겨서 가수에 버금가는 스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립 파제스 또한 자신이 연주한 곡의 아름다운 선율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꼭 그 곡을 연주하고 싶었다.

‘Ballade Pour Adeline’를 녹음한 후 올리비아 투생은 필립 파제스에게 이름을 보다 부르기 쉽고 친근한 것으로 바꾸기를 제안했다. 그래서 필립 파제스는 스웨덴 혈통인 할머니의 처녀적 성을 가져와 이름을 바꾸었다. 그 이름이 바로 리차드 클레이더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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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올리비아 투생이나 리차드 클레이더만은‘Ballade Pour Adeline’이 큰 성공을 거두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들의 예상을 빗나갔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이웃나라로 인기가 천천히 퍼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세계 38개국에서 2천만 장 이상의 판매를 올리게 되었다. 우리 한국만 해도 80년대에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연주할 줄 알면 한 번쯤 연주하고 싶어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성공은‘Ballade Pour Adeline’하나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창작곡, 영화 주제곡, 팝 히트 곡 등을 부드럽고 간결하며 낭만적인 방식으로 연주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그 결과 50여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동안 팔천오백만 장의 판매를 거두며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피아노 연주자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는 새로운 앨범을 녹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활동을 쉬었던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을 돌며 꾸준히 공연을 이어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3년만 해도 4월에 내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그 사이 이상적인 환경의 집을 갖기 위해 12년간 12번의 이사를 했다고 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지 리스닝 연주를 시작했듯이 최선의 가치라 생각하는 가족의 안정을 위해 새로운 앨범 활동을 쉴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이처럼 오랜 시간 앨범 활동을 쉬었기에 그의 새로운 앨범은 많은 사람들에게 반가움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보통은 쉬었던 만큼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경우는 여전히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며 “야! 시간이 흘러도 넌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라고 말할 때의 반가움 같다고 할까? 실제 이번에 새로이 연주했다는 ‘Ballade Pour Adeline’만 해도 37년 전 이 곡을 처음 연주했을 때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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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달콤함과 부드러움, 이것이야 말로 나는 리차드 클레이더만이 50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꾸준한 사랑을 얻었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랜 만에 선보이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 ‘낭만적’인 것도 그 때문이라 생각한다. 실제 이번 앨범에서 그는 클래식, 뮤지컬, 팝의 히트 곡이건 모든 것을 달콤하고 부드럽게 바꾸는 그만의 매력을 발산한다. 아람 카차투리안의 발레 음악 [스파르타쿠스]에서 가져온 ‘Adagio’, 역시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가 작곡한 발레 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Montagues & Capulets’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이들 서사적인 색채가 강한 곡은 그 안에 긴장을 담고 있다. 적절한 무게를 요구한다는 것. 그런데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연주는 한 때 클래식 콘서트 피아노 연주자를 꿈꿨던 연주자답게 원곡의 무게를 유지하면서도 결국은 부드러운 터치를 통해 긴장을 부담되지 않는 그윽함으로 바꾸어 버린다.

레오 델리브의 오페라 음악 [라크메]에 나오는 ‘The Flower Duet’, 쟈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아리아 ‘O Mio Babbino Caro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Nessun Dorma 아무도 잠들지 말라’처럼 원래 낭만적이고 달콤한 오페라 아리아의 연주에서 그의 부드러움은 더욱 더 빛을 발한다. 멜로디의 낭만성은 그대로 유지한 채 보다 편하게 보다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그의 연주는 분위기를 순화하고 또 순화한다. 그래서 일체의 불안과 긴장이 사라진 편안하고 평온한 세상을 그리게 한다. 슬프디 슬픈 멜로디로 눈물을 뚝뚝 떨구게 만들었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제 음악 ‘Shindler’s List’또한 그의 손을 거치면서 한결 슬픔의 정도가 덜 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이번 앨범에서 그는 자신이 새로운 음악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새로이 연주하고픈 곡을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름 아닌 현재 가장 인기 있는 팝 가수 아델의 히트 곡 ‘Someone Like You’를 연주한 것이 그렇다. 원곡의 피아노 연주를 좋다고 생각했는지 원곡의 피아노 연주를 반영하면서 훨씬 더 부드럽고 달콤하게 연주를 했다. 그래서 새로운 젊은 감상자들의 귀를 사로잡지 않을까 예상한다. 이 외에 시크릿 가든이 아일랜드 민요를 편곡하여 소개한 뒤 팝 그룹 웨스트라이프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에 의해 노래되어 인기를 얻은 ‘You Raise Me Up’, 비슷한 나이지만 90년대부터 주목 받기 시작한 이탈리아의 피아노 연주자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1996년도 연주곡 ‘Le Onde’의 연주, 그리고 세상에 알려진 지 20년이 지났지만 최근 영화로 만들어져 새로이 주목 받고 있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주요 곡을 엮어 연주한 ‘Les Misérables – Medley’ 또한 그의 피아노 연주에 대한 새로운 팬들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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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프랑스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일상을 소개하는 것을 볼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보여지는 그의 삶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피아노 연주자’의 것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소박했다. 무엇보다 매일 같이 새벽에 일어나 몇 시간을 연습하고 피아노 건반을 직접 닦는 모습은 그가 자신만의 기준으로 끊임 없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게 했다.

 

사실 어떠한 하찮은 분야 -그런 분야가 있겠냐 마는- 라도 오랜 시간 연구하고 노력한 사람을 무시할 수 없다.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사람이 한 일에서는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피아노 연주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달콤하고 부드럽게 연주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설령 쉽다고 해도 오랜 시간 이를 위해 매진한 사람의 연주는 쉽다고 물리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해마다 여러 연주자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연주 음악 분야에서 오랜 시간 리차드 클레이더만이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새 앨범 [Romantique]도 마찬가지. 기존 감상자나 새로운 감상자 모두 쉽고 편안한 연주이면서도 그것이 가볍다거나 뻔한 것으로 다가오지 않는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매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글 출처 : 다음 뮤직 - 낯선 청춘 최규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