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얼은 1990년대 중반,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이하 NIN)의 등장과 함께 음악 인구에 본격 회자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약 10년 정도 메인스트림 음악 필드를 휘저은 장르다. 


사실 유서가 꽤 깊은 이 음악 시스템은 1970년대 중, 후반 잉글랜드 북부의 공업 지대에서 발생해 비슷한 시기의 펑크(Punk)와 함께 대중 음악계의 일반 공식들을 전면부정하고 뒤엎으려는 혁명적 자세를 견지했다. 자연스레 핏기 없고 희망 없는 지하 인간들이 속속 휘하로 집결, 작지만 강력한 유대를 형성하며 주류의 매끈한 상업성에 강한 톤으로 비토권을 행사하였다.


전자 음악이라는 동류 요인을 고려,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클래식 테크노를 음악적 시원으로 봐도 좋지만 체제 전복적 함의를 지녔다는 측면에서 각각 영국 런던과 쉐필드에서 결성된 스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과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 등, 이른바 '예술적 무정부주의자'들을 직계 선조로 꼽는 것이 더 모양새가 맞다.


이 급진적 전자 실험의 선두에 섰던 스로빙 그리슬, 그 중에서도 프런트 맨 제네시스 피오리지(Genesis P-Orridge)는 산업 사회에서 인간이 기계 문명에 예속되는 과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며 일대 충격을 선사했다. 전통적인 록의 악기 포맷을 해체하고 코드와 리듬 패턴을 아예 무시하는 등의 음악적 행위들을 통해 기존 질서의 뒤엎음을 꿈꿨던 것. 이 때문에 '음악적 다다이즘'의 극점을 제시했다는 평을 얻기도 했으며 공연장에서는 심지어 주사기로 피를 빨아내고 오줌을 마시는 등의 변태적 행동으로 시청각의 동시 교란을 야기했다. 


허나 곧 그와 추종 세력들의 '극단을 위한 극단'은 언제나 그래왔듯, 짧은 역사 속에 소멸되었으며 이를 극복키 위한 후손들의 노력이 전개되었다.


1980년대 이후 인더스트리얼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하나는 유럽 본토로 수출되어 댄스 리듬과 도킹, 유로 바디 뮤직(euro body music, 줄여서 EBM)으로 개화했고 다른 하나는 헤비 메탈과 결합,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최신 인더스트리얼 버전의 맹아를 일궈냈다. 전자에서는 독일 출신의 아인슈튀르젠데 노이바우텐(Einsturzende Neubauten)과 벨기에산(産) 밴드 프런트 242(Front 242)가, 후자에서는 시카고에서 첫 경적을 울린 미니스트리(Ministry)와 프랑스발(發) 음악 공동체 KMFDM 등이 시그니처 아티스트로 거론된다.


NIN, 즉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는 둘 중 뒤의 스타일을 계승, 인더스트리얼을 단숨에 주류의 고속도로로 진입시켰다. 1989년 <예쁜 증오의 기계>(Pretty Hate Machine)(75위)로 음악적 가능성의 첫 문을 열어 젖힌 그는 1992년의 후속 EP <깨진>(Broken)(7위)으로 빌보드 차트에서 무려 70계단을 상승, 음악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퍼포먼스 아티스트 밥 플래나건(Bob Flanagan)이 분한 나체의 남자가 고문 기계에서 환희를 느낀다는 스토리 보드의 곡 'Happiness In Slavery'는 즉각적 논쟁을 촉발시키며 언론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해주었다.


1994년작 <하향 나선>(Downward Spiral)에서 트렌트 레즈너는 인더스트리얼의 고삐를 더욱 옥죄었다.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이 임신 중이던 배우 샤론 데이트를 살해한 장소에서 녹음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음반은 가볍게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안착, 전 지구촌에 인더스트리얼 바이러스를 마구 뿌려댔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상처 받은 보컬과 접근 가능한 가사로 트렌트 레즈너는 인더스트리얼의 혁명을 완성했다. 그는 이 암울한 음악 속에 인간의 영혼을 불어넣었다.”라는 격찬 속에 그를 '1997년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했다. 자연스레 여기저기서 '인더스트리얼 계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며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보냈고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필터(Filter) 등의 후속 뮤지션들이 뒤를 이었다.


인더스트리얼은 한마디로 세기말의 특성을 고스란히 내재한 변종 음악이었다. 그것은 Y2K 이전의 혼란스런 세계상을 반영하며 만성 시계 제로병에 시달리는 청춘 군상들에게 월 오브 노이즈(Wall of Noise), 즉 소음의 안식처를 제공해주었다. 또한 인더스트리얼은 서구 중심으로 구동 되어왔던 발전 일변도의 산업 사회 성장 모델이 얼마나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역설의 음악'이었다. 


바로 인더스트리얼이 인더스트리얼이라 불리는 까닭이다. 뉴 밀레니엄에 접어든 뒤, 다소간 힘을 잃기는 했지만 지금도 탁한 매연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인더스트리얼은 언제든 따끔한 교훈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