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비지스(Bee Gees)의 활동 35주년을 기념하는 CD 두 장 짜리 베스트 앨범이 출시되었다.

비지스는 국내에서는 아름다운 선율의 발라드음악으로 기억되지만 외국에서는 1970년대 말 디스코열풍의 주역으로 더 유명하다. 노래로 말하자면 'Holiday'나 'Massachusetts'보다는 'Stayin' alive'나 'Tragedy'가 더 중요한 위치를 갖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지스를 통해 디스코의 존재를 알고 그 열기에 빠졌던 탓에 디스코를 백인 댄스음악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디스코는 명백한 미국 흑인의 댄스음악이다. 흑인들이 출입하는 클럽을 중심으로 1970년대 중반 태동했으며, 연주하기에 제격인 펑크(funk)의 16비트를 8비트로 단순화하여 대중적으로 춤추기 좋게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펑크와 디스코는 더러 혼용되며 이 두 가지 스타일을 동시에 구사한 가수들이 많다.

 

디스코를 추는 장면은 별난 데가 있다. 댄스플로어에서 빙 둘러 모여 춤을 추다 한 명 씩 돌아가며 무대 중심으로 나와 동작을 취하면 그에게 박수와 환호가 쏟아진다. 이전의 춤들이 둘이 서로 쳐다보면 추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집단적이면서 개인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여기서 '누구나 춤을 추어 플래시를 받을 수 있다'는 흑인들의 평등의식이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디스코의 폭발을 주도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스토리 자체도 '누구나 출세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앞세우고 있다.

 

또한 디스코가 애초 동성연애자 클럽에서 환영받았다는 점은 그 음악에 성(性)의 관습을 타파하려는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음을 말해준다. 1979년 당시 최고인기를 누렸던 3인조 자매그룹 시스터 슬레지(Sister Sledge)의 히트곡 'We are family'는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곡이다. 백인 음악사회에서는 이런 디스코의 성격을 도외시한 채 상업적 흐름과 춤의 측면만 들여다봐 '통조림음악' '저질의 사창가 음악'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비지스에 의해 폭발했지만 디스코의 주역은 엄연히 글로리아 게이너, 도나 섬머, 쉭(Chic) 등 흑인가수들이었다. 한때 그 파급력은 롤링 스톤스, 로드 스튜어트, 블론디, 데이비드 보위 그리고 마돈나 등 록 가수들마저 감염시킬 만큼 절대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