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로 무장한 제 3세계 변방의 자기선언

 

레게는 매우 영리한 음악이다. 무거운 메시지를 단순한 리듬과 박자로 쉽게 전달하는, 방법적으로 뛰어난 음악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중가요의 속성을 제대로 갖춘 음악이다. 레게는 제3세계 음악이라는 약점을 닫고 쉬운 리듬 때문에 영미(英美) 사회의 침투에 성공했고 그리하여 메시지도 함께 설파할 수 있었다. 이처럼 레게는 쉬운 리듬과 진지한 메시지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한다.

 

레게는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조그만 섬나라 자메이카의 토속 음악이다. 구체적으로 50년대 중반 이후 자메이카 뮤지션들이 미국의 흑인음악 리듬 앤드 블루스를 받아들여 자기들 것과 혼합, 기차가 천천히 달리는 듯한 템포의 스카(Ska)와 거기서 변형된 록 스테디(Rock steady)를 발전시켜 만들어 낸 음악이다. 그 형태는 지극히 단순하다.

 

2박자, 4박자의 우리 트로트와 별 차이가 없다. 단지 박자의 중심이 트로트는 앞에 위치하고 레게는 뒤에 강박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따라서 트로트가 '쿵짝쿵짝'이라면 레게는 '짝쿵짝쿵'이 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다른 장르에 비해 베이스 기타가 상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 베이스 연주가 전면에 부각되어 리듬을 엮어 가면서 전체 분위기를 끌어간다. 베이스가 중요하다는 이 얘기는 곧 레게는 선율보다는 리듬에 역점을 두는 음악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베이스가 진행하는 경쾌한 리듬이야말로 레게의 생명이다. 리듬의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퍼커션'을 반복하는 것도 레게의 또다른 특성이다.

 

이로 인해 레게는 결국 댄스 음악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레게는 경쾌한 리듬으로 우선 듣는 사람이 동동 구르게 한다.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레게넘버라 할 수 있는 78년 보니 엠의 '바빌론의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을 연상해보라.

레게는 이 신나는 리듬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 미국인들도 자연스럽게 그 경쾌함이 주는 매력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레게가 영미 팝계에서 득세하기 시작한 때는 70년대 초반이었다. 자메이카인 데스몬드 데카의 69년 히트송 '이스라엘 사람들(Israelites)'과 72년 쓰리 독 나싱의 '흑과 백(Black and white)'에 이미 레게가 나타나지만 결정적인 것은 기타 영웅 에릭 클랩튼이 74년 '난 보안관을 쏘았어(I shot the sheriff)'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랭크 시키면서부터였다.

 

이를 전후로 폴 사이먼, 쟈니 캐시, 실버 트루 커넥션, 케이시 앤 선샤인 밴드, 이글스, 10CC 등이 레게 리듬을 채용한 노래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레게는 마침내 영미 팝계의 주요 장르로 인정받게 된다. 폴 사이먼의 '모자의 재회(Mother and child reunion)',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가 이 시기의 대표적인 레게 스타일의 팝송이었다.

 

80년대에 레게 열풍은 한층 가속화되어 블론디, 휴 루이스 앤드 더 뉴스, UB40, 맥시 프리스트 등 무수한 가수들이 레게 히트곡을 선보였다. 이 가운데 영국 그룹인 UB40는 아예 레게 전문 그룹을 표방하며 팝계에 등장했다. UB40의 노래 '레드 레드 와인(Red red wine)'은 자메이카가 아니 다른 나라 사람이 만든 곡 가운데 가장 우수한 레게 팝송으로 꼽힌다. 그들은 93년도 엘비스 프레슬리 오리지널인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어(Can't help falling in love)'를 레게로 재편곡, 차트 1위에 올려놓아 다시 레게 열기에 불을 당겼다. 레게의 외형적 매력은 이처럼 그 음악을 '제3세계 음악 가운데 유일하게 영미에서 대중화에 성공한 장르'로 만드는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레게의 진정한 힘은 그 외형에 숨어 있는 메시지에 있다. 거기에는 경쾌한 비트와는 다르게 자메이카 흑인들이 겪은 설움, 인종차별과 자본주의의 억압적 통치에 대한 반발, 흑인 의식의 고취 등 무거운 메시지가 살아 숨쉰다.

 

'레게의 명예로운 시인'으로 불리는 밥 말리(Bob Marley)가 슈퍼스타로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에릭 클랩튼의 '난 보안관을 쐈어'는 그가 쓴 곡이었다). 그는 대다수의 인구가 흑인이면서도 소수 백인이 지배하는 자메이카의 실정을 고발하기 위해 레게를 수단으로 삼았다. 그는 자신의 음악 즉 레게를 '반역 음악'이라 일컬었다. 거기에 저항적 가사가 일관되어 있음은 물론이었다.

 

'그들은 배가 가득 찼지만 우리는 배가 고파. 배고픈 민중은 성난 민중이야. 고통은 잊고, 슬픔을 잊고, 허약함을 잊고, 병약함을 잊고 춤춰요. 자 이제 약자는 강해져야 해' '그들은 배가 나왔어(Them belly full)'중에서 밥 말리는 자본주의의 통치를 고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전세계 흑인들의 단결과 투쟁 의식을 고취시키는 단계로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는 78년 극단적 대립으로 치달은 자메이카의 수상과 야당 당수를 무대에 출석시켜 화해를 주선하는 역사적 순간을 연출하는 등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 받았다.

 

밥 말리로 대표되는 레게의 본질은 공격성에 있다. 그가 보수적인 미국에 진출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라 최근 영화 <쿨러닝>의 주제 삽입곡을 히트시킨 지미 클리프, 버니 리빙스턴, 피터 토시, 서드 월드(Third World) 등 자메이카 레게 아티스트들은 대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격적인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레게가 70년대말 펑크와 결합하고(그룹 클래시, 스트랭글러즈 등) 80년대말 랩과 접목을 하게 된 것도 3가지 음악 전부 저항 음악이라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레게의 저항적 성질은 너무도 쉽게 간과된다. 미국 팝계는 의식적으로 레게의 메시지를 멀리한 채 외형 즉 댄스풍의 리듬만 수입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요즘 들어 부쩍 레게풍의 가요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레게 특유의 진중한 메시지는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리듬과 같은 형태만 빌어왔을 뿐이다. 외국 음악을 받아들일 때 리듬과 멜로디의 외형 뿐 아니라 노랫말을 아로새겨진 영혼을 함께 이해하면서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외형에 먼저 끌리는 10대의 감각에만 어필할 뿐 영속성과 영향력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

 

음악시장 싹쓸이 한 레게 팝의 위력

 

레게가 올해 댄스 음악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유럽과 미국은 물론, 한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도 레게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댄스 음악의 계절인 여름을 맞아 레게는 다른 장르의 추종을 불허하며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레게는 원래 자메이카 흑인들의 궁핍상과 영, 미의 억압적 통치 등을 통렬히 고발하며 아프리카 의식을 고취하는 '무거운 메시지'의 음악이다.

 

지난 81년 '위대한 레게의 전도사' 밥 말리의 사망 이후 특유의 저항성을 상실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그 대신 의미 있는 하나의 성과를 얻어냈다. 다름 아닌 댄스홀에서 전세계인들의 발을 구르게 만드는 춤음악으로 살아남게 된 것이었다. 레게가 댄스 음악의 왕자로 급부상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기도 했다. 리듬을 깔아 놓는데 있어서 드럼과 베이스에 강하게 의존하는 탓에 애초 어떤 음악보다도 흥겹고 중량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레게를 백안시하던 미국의 팝시장에 쉽게 전진 기지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친화력을 지닌 리듬으로 사람들을 춤출 수 있도록 유도해 낸 데 있다.

 

영, 미 팝계의 현황을 보자. 현재 막강 인기를 누리는 스웨덴의 혼성 4인조 에이스 오브 베이스는 레게 비트가 감각적으로 배인 곡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All that she wants)'으로 미국 정복의 길을 텄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6인조 빅 마운틴은 피터 프램튼의 76년도 오리지널 '난 너의 방식을 사랑해(Baby I love your way)'를 레게로 리메이크하여 히트 차트를 주름잡았다.

 

빅 마운틴은 지난해 레게붐을 자극한 UB40와 그룹 성격이나 히트 시기 등 여러 면에서 비슷한 경로를 밟으면서 레게 열기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한 국내에서는 최근 파파 위니라는 생소한 이름의 가수가 부른 레게송 '룹시 붑시 너는 나의 태양(Roopsie & Boopsie you are my sunshine)'이 팝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유명한 전통 포크송을 재미있게 각색했다는 점이 두드러지지만 이 곡은 뭐니뭐니해도 경쾌한 레게리듬으로 어필했다.

 

빅 마운틴 파파 위니의 노래는 순수한 레게라기 보다는 팝적인 감각을 가미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른바 레게팝 그리고 '댄스홀 레게'다. 원래가 신나는 음악을 더욱 쉽게 대중적으로 포장해 놓았으니 신세대 구매층을 장악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팝감각의 재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자메이카나 구미의 레게 뮤지션들이 터득한 것이다. 이 때문에 팝 관계자들은 앞으로도 많은 레게팝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레게팝의 득세가 말해주듯이 레게가 한층 댄스음악의 색채를 강화하게 된 것은 80년대 말부터 일기 시작한 '랩과의 동거'에 힘입은 바 크다. 레게와 랩은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흑인 동포의 음악'이라는 점에서 밀월 관계가 성립되었다. 실제로 랩은 레게의 영향 아래 태동되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초장기 랩을 하던 흑인들 가운데 자메이카 출신이 많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92년 <뉴스 위크>지는 '랩이 레게를 만났을 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클라이브 캠벨이 1967년 자메이카의 킹스턴을 떠나 뉴욕의 브롱크스로 이사온 것은 12세 때였다. 그는 자동차 정비공을 양성하는 직업학교 알프레드 E 스미스 고교에 다니면서 파티를 자주 했다. 고향 자메이카의 레게 가수를 본떠 음량이 큰 이동 스피커 시스템과 엠씨(사회자)들이라는 단원을 마련했다. 캠벨은 검둥이 쌍둥이(Nigger Twins)라는 무용수를 거느렸으며 사운드 시스템을 허큘로즈(Herculords)라 이름붙였다.

 

또 쿨 DJ 허크(Kool DJ Herc)라는 그럴 듯한 자신의 예명도 만들었다. 브롱크스의 헤발로라는 클럽에서 허크와 허큘로즈는 음악의 새 역사를 창조했다. 그가 자메이카식의 이러한 '축제'와 미국의 펑크(funk) 음악을 별 뜻 없이 혼합한 데서 지난 20년 동안의 대중 문화 사상 가장 중요한 혁신이 일어났다. 바로 랩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랩과 레게는 근 20년이 지나 또 한번 만나게 된 셈이다. 샤바 랭크스(Shabba Ranks) 슈퍼 캣(Super Cat) 매드 코브라(Mad Cobra) 같은 가수들은 레게에 랩을 접목해 더욱 다이내믹해진 신(新)레게 음악을 들려준 기수들이었다. 뉴욕과 킹스턴을 오가며 사는 슈퍼 캣은 말한다. “레게와 랩은 둘 다 빈민굴(ghetto)의 음악이다. 표현 방식도 같다. 마찬가지로 여자, 총, 숨가쁜 인생살이, 뿌리와 문화 등 모든 것을 음악에 담는 것이다”

 

지난 89년 랩가수 KRS 원 또한 랩과 레게를 섞은 노래 '함께 파티를(Party together)'를 불렀는데 그 내용은 '레게와 랩은 선을 가로질러 함께 파티하고 있다. 랩과 레게가 다르다는 것은 거짓이다. 힙합 레게(Hip-hop Reggae)가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레게 랩 커넥션'으로 인해 레게는 랩의 전자 및 컴퓨터 사운드를 보강하면서 보다 확실한 댄스 음악의 면모를 다질 수 있었다. 그것이 댄스홀 레게였다.

 

일본 도쿄에서는 지난 4월 자메이카 정상급 가수들이 대거 출연한 제10회 '레게 저팬스플래시' 행사가 개최되어 전 일본열도에 레게붐을 일으켰다. 우리 대중 음악계에서도 김건모, 임종환, 마로니에 등에 의해 팝적인 레게가 이미 시장성이 입증된 상태다. 바야흐로 전세계 음악 시장이 레게라는 저 서인도 제도의 자메이카에서 불어온 바람에 휩싸여 있다. 이제 레게에 맞춰 춤추는 계절이 왔다. 아니 그런 시대가 도래했다.

 

-TV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