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tBasie.jpg '스윙의 왕'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1904.8.21 - 1984.4.26)
재즈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웬만한 영화 뺨치는 그 흥미진진함에 밤을 꼴딱 세워야했던 날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하는 카운트 베이시와 1930년대 전후 상황, 그 활동의 본거지였던 캔사스에 관한 대목은 손꼽을 만한 것으로, 로버트 올트먼(Robert Altman) 감독이 구지 [캔사스 시티]라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어도 누군가는 손댈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음악 느와르가 존재한다.

금주법(1920~1933)과 대공황(1929~1933) 시대에도 치외법권 적 환락을 누렸던 이 캔사스 시티는 월터 페이지, 베니 모튼, 클락 테리, 핫 립스 페이지, 레스터 영 등 당대 최강의 재즈 뮤지션들이 일자리를 찾아 운집했던 곳으로, 바로 이 재즈의 강호에서 오늘의 주인공 카운트 베이시(1904~1984)는 마치 정글을 뚫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흑 곰처럼 '스윙의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상대적 라이벌이자 '스윙의 쌍벽'으로 불리는 '공작(duke)'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이 일찌감치 금싸라기 뉴욕을 접수한 상황이었지만 '백작(count)' 카운트 베이시가 이끄는 악단은 또 다른 밤의 도시 캔사스를 무대로 독자적인 스윙 스타일을 개척해 나아갔다. 이른바 '캔사스 시티 스타일'의 이 음악은 '스윙은 춤을 추는 음악'이라는 단순한 정의를 비켜가며 예술적 접근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One O'Clock Jump'의 마지막 소절에서처럼 '캔사스 시티 스타일'의 특징은 바로 '리프(Riff) 밴드 스타일'에 있었다.
전달력이 강한 반복악절(리프)을 앙상블의 전면에 내세워 테마가 되게 하거나 그것을 배경삼아 솔리스트가 즉흥연주를 펼친다. 여기에 느슨하고 유연한 사운드의 구조, 강렬함 보다는 부드럽게, 복잡함보다는 간결한 편곡이 바로 뉴욕의 스윙과 차별되는 베이시 악단만의 개성이었다. 이렇게 긴장감보다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던 연주 스타일이었지만 동시에 리듬에 관한 감각 역시 최고였다. 이것은 다른 말로 '점프' 감각이라고도 하는데, 베이시 악단은 다양하고 예측불허 한 리듬의 변주를 통해서 끝없이 스윙하는, 그야말로 '스윙의 왕'이라는 타이틀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템포의 바리에이션(Variation)과 관련한 특징은 카운트 베이시의 피아노 스타일과 연관이 있다. 베이시의 피아노 연주는 가볍고 생동감 넘치는 컴핑, 정확한 음의 선택, 템포에 대한 남다른 센스를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컴핑 주법은 당시만 해도 매우 독창적인 연주법으로, 1940년대까지도 베이시 이전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주법이었다. 베이시 악단이 간혹 보여주는 갑작스러운 슬로우 다운, 혹은 갑자기 빨라지는 더블 타이밍과 같은 템포의 변화는 확실히 베이시의 피아니 즘과 맥을 같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인기가 곧장 미국 전역을 장악했던 것은 아니었다. 1937년에 뉴욕으로 처음 입성했던 베이시 악단은 캔사스 시티 시절의 블루스와 오리지널 리프 곡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쇼 비즈니스의 중심지였던 뉴욕에서는 가능한 한 유행가, 영화 주제가에서 탱고, 룸바까지 좀 더 다양한 레퍼토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뮤지션들로 포진되었던 베이시 악단이 적응력을 발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38년 1월 '사보이 볼룸'에 출연하여 극찬을 이끌어낸 후 38년 7월부터는 유명 클럽이었던 '페이머스 도어'에 출연하게 되었고, 이어 39년부터는 전국 순회공연의 대 장정에 나서게 된다.
카운트 베이시를 살펴본다는 것은 한 인물의 역사 뿐 아니라 동시대 재즈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있어 효과적인 학습방법이 된다. 더불어 캔사스 시티가 속해있는 미주리 주(Missouri)는 마치 재즈의 역사에서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캔사스 시티는 캔사스 주가 아닌 미주리 주에 속해있다).

미주리 강과 캔사스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이 곳은 초기 재즈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랙타임(Ragtime)'이 가장 번성했던 지역으로, 저 유명한 스콧 조플린(Scott Joplin)의 'Maple Leaf Rag'이라는 곡도 이 지역의 클럽 이름을 본 따 만든 작품이었다. 카운트 베이시가 전성기를 구가하며 뉴욕으로 진출하던 시절, 같은 미주리 주 출신의 막강 재즈 뮤지션들 역시 뉴욕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마치 '삼국지'의 세 나라처럼 시카고와 뉴욕, 캔사스가 재즈의 헤게모니를 잡고 충돌했던 그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것이다.

재즈의 전설 찰리 파커가 캔사스의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재즈를 배울 수 있었고 마일스 데이비스 역시 미주리 주 세인트 루이스에서 출생하였다. 스윙시대의 인기 보컬리스트였던 캡 캘러웨이(Cab Calloway)의 초기 밴드 '미주리안즈'의 음반이나 팻 메스니와 찰리 헤이든의 조인트 앨범 가 왠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희아의 지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