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작품의 배경 및 개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은 전작인 교향곡 제4번을 작곡한지 11년이 지난 1888년 완성된다. 이 교향곡은 곡 전체에 일관적으로 흐르는 ‘운명의 주제’에 대한 순환형식이 전곡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교향곡 제5번은 전작인 교향곡 4번과 달리 동일한 주제 동기가 모든 악장에서 사용되는데, 1악장에서는 장송곡 느낌의 주제로 시작하지만 이것이 차츰 변화하여 4악장에서는 승리의 행진곡이 된다. 이 주제는 민혜경이 부른 가요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에 사용되어 우리에게 친숙(?)해졌다. 따라서 특정 주제를 반복해서 사용한 것도 마치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에서 ‘운명의 동기’를 사용한 것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차이코프스키는 교향곡 제5번을 작곡하기 한 달 전, 이 곡의 주제가 ‘신의 섭리’라는 메모를 남겼는데, 그의 심정과 곡상의 전개가 바로 베토벤을 연상시키고 있어서인지 이 곡이 차이코프스키의 ‘운명교향곡’이라는 평을 듣는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작곡하기 전 1883년 3월 오랜 유럽연주 여행을 마치고, 크린 근교 프롤로프스코예 마을의 숲으로 둘러쌓인 오래된 장원의 집을 얻어 정착하고 틈이 날 때마다 숲을 산책했다. 그리고 이 곡을 작곡하던 1888년 6월 ‘폰 메크’ 부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교향곡을 하나 쓸 생각입니다. 시작은 힘들었지만 이제 영감이 온 것 같습니다.”라고. 그리고 8월 6일 편지에서는 “교향곡의 절반가량 오케스트레이션이 끝났습니다. 그렇게 노인도 아닌데 나이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아주 피곤합니다. 예전 같이 앉아서 피아노를 칠 수도, 밤에 책을 읽을 수도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작곡에 전력을 다했다는 의미이며, 드디어 곡은 그해 8월 26일 완성된다. 초연은 11월 17일 페체르부르크에서 본인의 지휘로 있었으며, 곡은 그의 스승인 테오도르 아베-랄레멘트에게 헌정하였다.

 

초연 당시 비평가들은 냉담했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도 이 곡에 대하여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던 듯 하다. 당시 폰 메크에게 보낸 차이코프스키의 편지 내용이다. “그 속(교향곡 제5번)엔 뭔가 싫은 것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꾸며낸 색채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느끼는듯한 조잡스런 불성실이 있습니다.”라고. 그러나 정작 이 곡은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모스크바, 함부르크에서 본인이 직접 지휘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따라서 자신감을 얻은 차이코프스키는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이 곡을 연주하여 오늘날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1st Andante. Allegro con anima

제1악장은 서주의 첫머리에 클라리넷의 무겁고 어두운 선율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운명의 주제'로 전 악장에 걸쳐 모습을 보인다. 차이코프스키는 1악장의 도입부에 대해, “운명, 그 알 수 없는 신의 섭리에 대한 완전한 복종”이라고 적어놓았다. 주부는 알레그로 콘 아니마로 클라리넷과 파곳이 옥타브에서 나타나는 제1주제는 어두운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리듬과 선율은 폴란드 민요에서 따온 것이다. 이후 곡은 유려하고 밝은 느낌으로 진행된다. 제시부는 끝에서 제1주제와 하나가 되어 다이나믹한 효과를 발휘한다. 발전부는 대부분 제1주제의 전개라기보다 동기의 끝없는 반복이다. 코다는 제1주제의 동기가 강하게 나오다 사라진다.

 

2nd Andante cantabile, con alcuna licenza

제2악장은 안단테 칸타빌레로 자유로운 복합 3부형식이다. 현악기의 도입에 이어 호른 독주가 나오는데, 그리움을 풀어내듯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이어 오보에가 부드럽게 밝은 색채를 더한다. 이 악상이 확대되어 정점에 달하고 크게 넓혀지다 가라앉는다. 이어 운명을 나타내는 주 악상이 커다랗게 울려 퍼지며 나타난다. 이어 곡은 중간부가 끝나고 주부로 복귀하고, 코다에서는 주제선율이 한 번 더 나온 후 조용히 마친다.

 

3rd Waltz. Allegro moderato

제3악장은 이례적으로 스케르초가 아닌 화려하고 아름다운 왈츠이다. 당시 유럽 살롱을 휩쓸던 왈츠의 영향이 3악장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몽환적인 이 왈츠의 중간부는 세밀한 움직임으로 활발하게 이어지다가 후반부는 주제의 선율이 다시 나타나는데, 곡상은 마치 꿈을 현실로 돌리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이다.

 

4th Finale. Andante maestoso - Allegro vivace

제4악장은 론도 소나타 형식이다. 서주의 주제 선율은 현과 관의 합주형태로 변하면서 장엄하게 나타난다. 주부는 알레그로 비바체로 강렬하고 화려한 제1주제를 연주하고, 이어 추이 주제가 나온 다음 이것이 발전한다. 제2주제는 세밀한 움직임이 목관으로 연주되고 이것이 크게 발전하면서 금관이 이를 받아 거친 발전부로 들어간다. 이어 제1주제 제2주제가 차례로 이어지고 재현부로 들어가면 웅장한 클라이맥스가 되는데, 팀파니의 강렬한 연타 이후 모데라토 아사히 에 몰토 마에스토소로 당당하게 연주되면서 화려한 코다로 향한다. 엄숙하고 웅대한 느낌은 비애를 극복한 강한 마음(운명)을 소리 높여 연주하는 듯 하다. 이어 곡은 빠르고 강렬한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포르티시모로 장엄한 운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