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nardcohen.jpg Leonard Cohen(1934. 9. 21. ~ , 캐나다 )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


  레너드 코헨의 목소리는 바싹 마른 아스팔트 바닥에 담배를 비벼 끄는 것 같이 삭막하고 건조한 느낌이 든다. 혹은 북아일랜드의 히스 덤불이 가득한 언덕에서 겨울바다를 바라보는 스산함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스산함, 황량함은 묘하게도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나는 마음에 상처가 가득한 사람을 보면 언제나 레너드 코헨을 들으라고 말한다. 그의 목소리엔 묘한 치유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는 도시의 폐허, 황량한 숲 한 가운데 뻥 뚫린 공터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같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차갑지 않고, 회색빛 하늘을 이고 있는 겨울의 골목 모퉁이에 기대서서 뽑아먹는 자판기 커피만큼이나 따뜻하고 구수하다.

 

  가수라고 하기에는 거칠고, 단조롭게도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비록 가수로서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아티스트로서는 전혀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흑백 사진의 한 귀퉁이를 뚫고 들려올 것만 같다.

 

  그는 단조로운 모노톤의 그러면서도 역시 그만이 던져줄 수 있는 묘한 기품과 깊이가 있다. 세상에 음유시인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아티스트는 많으나 그는 그냥 명칭 뿐의 음유시인이 아니라 실제로 소설과 시집을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교재로 사용하는 대학도 있다.

 
  레너드 코헨의 노래를 듣노라면 어느새 친구가 자신의 홀어머니와 살던 깊은 골목 작은 셋방집이 떠오른다. 우리는 모두 가난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녀석의 집에는 턴테이블이 있었고, 우리는 지금은 보기 어려워진 LP레코드판을 사서는 곧장 그 친구네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항상 집에 계시지 않았고, 우리는 갓 뜯은 LP 재킷을 저만큼 던져놓고는 너나할 것없이 스피커 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간혹 운좋게 주머니에 몇 푼의 돈이라도 들어 있을 때면 라면 몇 봉지로 허기를 달래곤 했다. 우리는 모두다 궁기들린 가난한 청소년들이었지만 레너드 코헨의 노래를 듣는 동안만큼은 가난하지 않았다. 이 때 내가 가장 사랑한 노래는 <낸시>였다. 텅빈 방 안에 앉은 여자가 낸시일지, 아니면 수잔일지를 놓고 우리는 내기를 벌였고, 당시엔 금지곡이었던 <Partisan>이란 곡은 과연 얼마나 좋을지 궁금해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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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

 

   캐나다 태생의 시인 겸 소설가였던 레너드 코헨은 60년대에 나타난 가장 개성있는 시적인 가수였다. 그의 약하고 단조로운 음성과 빈약한 가락은 음악적 호소력에 제한적인 요소로 작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의 시어가 실제로 황량하고 굳어져 있으며, 때로는 침울한 것으로 묘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약점을 보상하듯이 그의 노랫말은 그 곳에 내재된 밀도있는 휴머니티를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다.

 

  1934년 9월 21일, 캐나다 몬트리얼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레너드 코헨은 맥길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1955년에는 그의 첫 시집을 출판하였다. 60년대를 통해 그는 많은 시집들을 발표하였을 뿐만 아니라 『The Favorite Game』과 『Beautiful Losers』라는 두 권의 소설도 출판하였다. 이제는 대학의 교재가 된 그의 두 번째 작품은 1966년에 출판된 것인데, 10년이 채 못되어서 30만부 이상 팔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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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배운 레오나드 코헨은 15세 때부터 자신의 기타 반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으며, 성년이 되기 전까지 창고 극장을 무대로 한 벅스킨 보이즈라는 댄스 그룹과 함께 연주를 하였다.

 

코헨의 세 여인, Suzanne, Nancy 그리고

 

  그는 1964년 경부터 작곡을 시작하였는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었으나, 주디 콜린즈가 코헨의 가장 낭만적인 작품 중의 하나인 <Suzanne>라는 곡을 그녀의 1966년 앨범 『In the Life』에 취입, 수록함으로써 새로운 장을 맞이하게 되었다. 코헨은 그 해에 연주 활동을 시작하였고, 1967년에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과 뉴욕 센트럴 파크에 콜린즈와 함께 출연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다. 컬럼비아 레코드사와 게약을 맺고, 처음으로 출반한 콜린즈의 데뷔 앨범에는 <Suzanne>를 비롯하여, <Stranger Song>, 애조를 띤 <Hey, That's No Way To Say Goodbye>, 그리고 연민에 가득찬 <Sisters of Mercy> 등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나중의 3곡은 주디 콜린즈의 앨범 『Wildflowers』에도 이미 수록되었던 곡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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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가 지난 후, 코헨은 북미주와 유럽 순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Songs From a Room』이란 앨범을 출반하였는데, 그 중에는 자주 출반이 되었던 그의 고전곡인 <Bird on the Wire>가 수록되어 있었다. 1970년에 공연 활동을 멈춘 그는 1971년이 되어서 『Songs of Love and Hate』를 녹음하여 발매하였는데, 거기에는 <Dress Rehearsal Rag>, <Diamonds in the Mine>, 그리고 <Love Calls You by Your Name>과 같은 곡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코헨은 그의 오랜 은퇴 기간 동안에, 『The Energy of Slaves』라는 또 다른 한 권의 시집을 출판했으며, 컬럼비아 레코드사에서는 이미 발매되었던 실황 녹음곡들을 모아서 음반을 출반하였다.

 

  결국 코헨은 1974년에 재등장하여 신곡들로 구성된 앨범, 『New Skin for the Old Ceremony』를 출반하였고, 1975년에는 다시 순회공연을 하였다. 그 후에 워너 브라더즈 레코드사로 이적한 그는 비범한 작고자이며 제작자인 필 스펙터와 제휴하여 1977년에 『Death of a Ladies' Man』이란 앨범을 발표하였으나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이 앨범은 우선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의 하모니가 돋보인 <Tower Of Song>, <Everybody Knows>을 비롯하여 스페인의 순교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s Lora)의 시 <Little Viennese Waltz>를 가사로 한 <Take This Waltz>와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레너드 코헨이라는 이름에 대중성을 부여했던 <I'm Your Man> 등 앨범 전반이 고르게 히트하는 저력을 과시하며, 국내에서도 다시금 그의 이름을 드높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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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에 이르러 코헨은 『Recent Songs』를 녹음하였는데 이 앨범은 컬럼비아 레코드사에서 출반되었다. 한편 1985년에는 신서사이저가 가미된 9집 『Various Positions』를 발표하며, <If It Be Your Will>과 <Hallelujah>, 그리고 우리에겐 윤설하의 <벙어리 바이올린>으로 우리에게도 알려진 <Dance Me To The End Of Love>를 히트시키고 세계 순회공연을 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펼쳤다. 1987년 가을, 레너드 코헨은 캐나다 몬트리올과 파리, L.A 등지를 오가며 제작한 새 앨범을 내놓았는데, 그 앨범이 바로 코헨의 앨범중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안겨다주었던 10집 『I'm Your Man』이다.

 

  1991년 겨울엔 R.E.M., Jean-Louis Murat, Bill Pritchard, John Cale, Nick Cave 등 그의 추종자들이 모여 헌정앨범 『I'm Your Fan』을 발표하는데, 레너드 코헨의 히트곡들을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신세대에게까지 그의 이름을 알리는데 일익을 하였다. 그로부터 일년 뒤 레너드 코헨은 이전과는 다른, 사회성이 짙은 가사를 담은 앨범 『The Future』를 발표하는데, 이 앨범은 더욱 풍부해진 사운드와 다이나믹한 리듬감의 변화 등으로 코헨의 음악경력에 있어서나 인기에 있어 그를 정상의 자리에 끌어 올리게 된다. 자유와 민주화를 기리는 미래에 대한 그의 소망이 담긴 작품으로 평가받은 이 앨범을 통해 <Anthem>, <Democracy>, <Closing Time> 등을 히트시키며 그가 지난 날의 틀 속에만 안주하는 아티스트가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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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ic Rock

 

  포크에서 발전된 1960년대의 록음악들은 가사들은 그 뿌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깊이 있는 주제와 이미지, 시적인 표현들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는데, 미국의 대학에서 학문으로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밥 딜런의 가사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고, 로큰롤을 하던 비틀즈도 이러한 가사적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존 레넌의 싱어 송라이터 적인 작업들이 그 일례로 들 수 있다. 시적인 표현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요소들은 그 깊이와 이미지의 차이는 있지만 조니 미첼, 닐 영, 제임스 테일러, 랜디 뉴먼, 폴 사이먼, 캣 스티븐스, 레너드 코헨 등의 작업에서 발견된다. 이 중 레너드 코헨은 1968년에 싱어 송라이터로 등장하기 전에는 이미 인정받는 소설가이자 시인이기도 했다. 이후 이런 포에틱 록은 수잔 베가, 트레이시 채프먼 등 여성 싱어송 라이터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글 출처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