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7월 19일. 미국의 데스 메탈그룹 카니발 콥스(Cannibal Corpse)의 음반을 불법으로 유통시킨 모 레코드사 직원 두 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사의 폭력성 때문에 심의 통과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가사의 일부를 수정해 유통시킨 혐의였다. 검찰과 언론 매체는 이 일을 '악마주의 음반사건'으로 규정짓고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사건은 데스 메탈 같은 계열의 음악과 심의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전향적이지 못한가를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물론 그들이 심의를 통과시키기 위해 서류를 위조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데스 메탈을 무조건 악마주의 음악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잘된 것은 아니다.

 

잘 가공되고 예쁘장하게 포장된 주류 음악이 존재한다면 이에 반하는 비주류 음악이 태동하고 꿈틀거리는 것은 당연하다. 데스 메탈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하나의 현상 또는 문화로서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한다. 다양성을 수용해야 문화 선진국 대열에 끼는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

 

데스 메탈은 말 그대로 '죽음의 장르'다. 헤비메탈이 지니고 있는 난폭함과 과격함을 극점까지 끌어올린 음악이다. 사운드는 1980년대 메탈리카(Metallica)로 대표되는 스래시 메탈에서 더욱 코어적으로 세포 분열하여 매우 강렬하다. 빠른 스피드와 그로울링한 보컬 등 공격성의 최대치를 자랑한다. 가사도 죽음에 대한 찬미, 고통, 폭력 등을 소재로 한다.

 

데스 메탈의 진원지는 미국의 플로리다. 1980년대 후반 스래시 메탈의 영향을 받은 데스(Death), 오비추어리(Obituary), 모비드 엔젤(Mobid Angel) 등이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데스 메탈의 기틀을 다졌다. 데스의 1988년 앨범 <Leprosy>, 이듬해 발표된 오비추어리의 앨범 <Slowly We Rot> 등이 시발점이 된 작품들이다. 또한 영국의 네이팜 데스(Napalm Death), 네덜란드의 페스틸렌스(Pestilence)도 플로리다 그룹들과 함께 데스 메탈의 전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데스 메탈은 멜로딕 데스, 테크니컬 데스, 부루틀 데스(Brutal Death) 등으로 장르의 세분화를 진행시켰다. 멜로딕 데스는 가장 많은 그룹들이 포진해 있는데 대부분 특유의 서정미가 있는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활동무대다. 스웨덴의 인 플레임스(In Flames), 다크 트랜퀄리티(Dark Tranquillity), 디섹션(Dissection), 에지 오브 새너티(Edge Of Sanity), 핀란드의 센텐스드(Sentenced), 아모피스(Armophis) 등이 대표주자들이다. 특히 인 플레임스의 1995년 음반 <Jester Race>, 에지 오브 새너티의 1996년 음반 <Crimson>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데스 메탈이 결합된 멜로딕 데스의 지평을 한껏 넓힌 명반들로 평가받고 있다.

 

테크니컬 데스는 멜로딕 데스의 장점을 받아들이며 개개인의 연주 테크닉을 부각시키는 음악이다. 때문에 프로그레시브적인 진행과 꽉 짜인 곡 구성력이 돋보이는 장르다. 미국 출신의 애시스트(Atheist), 영국 리버출 출신의 카르카스(Carcass)와 아크 에너미(Arch Enemy) 등이 테크니컬 데스의 주요 밴드들이다. 대표적 작품들로는 1991년 애시스트의 <Unquestionable Presence>, 1994년 카르카스의 <Heartwork>가 있다.

 

마지막으로 부르틀 데스는 데스 메탈의 종착역이다. 엄청난 빠르기와 막강 사운드를 앞세워 극단의 미학을 일궈낸다. 오로지 골수 매니아들을 위한 계열의 음악이다. 단숨에 국내에서 악마주의의 대표 그룹으로 자리 잡은 카니발 콥스를 비롯해, 디어사이드(Deicide), 브로큰 호프(Broken Hope) 등이 부르틀 데스의 분수령을 이뤘다. 1997년 디어사이드의 작품 <Sepents Of The Light>, 카니발 콥스의 1991년 앨범 <Butchered At Birth>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