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hythm & Blues

 

 

국내 대중음악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일이 리듬 앤 블루스 즉 R&B이다.

많은 가수들과 음악관계자들 그리고 팬들 입에 이 말이 오르내린다.

1990년대 초반부터 가요계에 붐을 이루기 시작해 지금은 확고하게 자리잡은 이 장르는 한마디로 흑인 전통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음악은 우리 가요의 물줄기를 이전의 백인 중심의 음악에서 흑인음악으로 돌려놓은 계기를 마련했다. 리듬 앤 블루스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이 음악이 사랑 받고있는 것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2005년 가요계에는 유독 리듬 앤 블루스 줄여서 R&B라고 하는 음악을 표방하고 나선 가수들이 많았다. 가요 순위프로그램에서 '어제처럼'으로 1위를 차지한 제이(J)를 비롯하여 가창력으로 인정받은 여가수 박정현 박화요비 그리고 박효신 등 신인들이 R&B 음악을 가지고 데뷔했다. 이외에도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소냐, 포 멘과 같은 가수들도 이 음악을 가지고 활동했다.

 

박화요비와 같은 가수는 심지어 앞으로 R&B만을 전문으로 하겠다는 의지 아래 '화요일과 R&B'를 합하여 '화요비'란 예명을 만들었다고 한다. 기성가수 중에서는 조규찬 조규천 조규만 형제의 '조트리오', 양파, 페이지가 이 계열의 음악을 구사한다. 이렇게 많은 가수들이 R&B 음악을 들고 나오자 방송사 연예프로그램도 여러 차례 R&B열기에 대해 집중보도하기도 했다.

2000년에 화제를 모았다고 해서 R&B 음악이 뉴 밀레니엄 첫해에 국내에 소개된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1995년 서태지 김건모 못지 않게 인기를 누렸던 그룹 '솔리드'에 의해 알려지면서 하나의 주요한 장르로 자리잡았고 김건모 신효범 유영진 박진영 등도 이 물결에 가세해 R&B 열풍을 주도했다.

 

R&B 음악은 여러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요약하면 '노래부르기'에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면 이 음악을 소화했다고 볼 수 없다. 이를테면 R&B는 가창력이 그다지 중시되지 않고 신나는 동선(動線)과 이미지가 전부인 국내 주류의 댄스음악에 상대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리듬 앤 블루스는 댄스음악의 획일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주목받은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노래솜씨가 경시되는 풍토에서 '노래란 이처럼 가창력이 중요하다'고 시위(?)하는 것이라고 할까. 박정현 박화요비 등 2005년에 등장한 R&B 가수들부터가 언론과 평론가들로부터 근래 가수들 중 드물게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이들은 강한 리듬의 댄스곡도 부르지만 대체로 느린 발라드에 중점을 둔다. 아마도 발라드라야 제대로 자신들의 가창력을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유심히 보면 그 R&B 발라드를 부르는 것도 일반적인 발라드를 부르는 것과는 차이가 나타난다. 결정적인 순간에 유연하게 음의 높낮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른바 특유의 '꺾기' 창법이 있다. 더러 음폭이 매우 크게 나타나는 이 꺾기 방식은 느낌은 다르지만 우리의 재래식 트로트 노래하기와도 유사한 감이 있고, 전문가들은 그래서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부담이 없다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댄스에 대한 대항마 개념으로 R&B가 관심을 모은 것처럼 미국에서도 이 음악은 1990년대를 강타한 신세대 흑인음악 즉 랩(힙합)의 위력에 맞서 부상했다. 랩은 주지하다시피 노래라고 하기보다는 '지껄이는' 스타일이다. 도시 흑인빈민 거리에서 잉태된 랩 음악은 미국의 젊은 흑인들을 사로잡으면서 저항의 기치를 높이는 등 대중음악풍토에 새로운 획을 그었지만 기존의 노래에 익숙한 사람들은 도무지 따라할 수가 없어 정나미가 떨어지는 음악이기도 했다.

 

당시 보이스 투 멘(Boys Ⅱ Men) 올 포 원(All 4 One) 그리고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등의 R&B 발라드들이 '랩에 정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것은 당연했다. 1992년 영화 <보디가드>에 삽입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휘트니 휴스턴의 '당신을 항상 사랑하리(I will always love you)' 한 곡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가창력도 우수하고 곡도 가슴에 더 다가온 탓에 이들의 음악은 오히려 랩보다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미국의 흑인음악계는 'R&B 대 랩'이라는 대치국면이 형성되면서(그렇다고 두 진영이 싸운 것은 아니다) 시장을 분할하는 양상을 보였다.

 

여기서 R&B는 신식 리듬의 랩과 비교하여 '전통의 흑인 선율음악'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대부분 음악관계자들과 팬들은 그렇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R&B 하면 대부분은 먼저 '보컬음악'을 떠올린다. 보컬 하모니와 코러스를 중시하는 가수의 보컬 개념으로 생각하지, 연주하는 밴드로는 관련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근래의 R&B 가수 가운데 연주그룹은 없다.

 

하지만 원래 리듬 앤 블루스는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리듬 앤 블루스란 말 그대로 미국의 흑인 토속 민요라 할 블루스에 리듬이 얹혀진 것을 의미한다. 블루스는 미국 남부 미시시피지역에서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에 의해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잉태된 음악으로 그것은 아프리카의 음악과는 기본적으로 달랐다.

 

백인 농장주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금지하면서 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북과 자기 몸을 두드리며 신명나게 춤추던 것과는 판이한 '12소절 기준의 슬픈 음악'을 연주하고(주로 기타로) 부르게 되었다. 그것이 블루스였다. 다시 말해 블루스는 아프리카 시절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리듬이 거세된 것이었다.

 

결국 흑인들은 미국사회 내에서 신분이 상승되면서 그 '잃어버린 리듬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이 흑인음악의 20세기 역사이기도 했다. 1930년대의 블루스와 리듬이 생명인 1990년대의 힙합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부의 흑인노예들은 2번에 걸친 세계대전 기간에 주인이 해방시켜주었든, 몰래 도망치든 북부 대도시로 이동하게 되었고 그리고 1940년대에 시카고와 같은 도시에서 전기로 소리를 증폭하는 일렉트릭 기타를 접하게 된다. 흑인들은 전기증폭에 의해 마침내 시골 블루스에서는 없던 리듬을 획득했다. 리듬 앤 블루스는 그렇게 생성된 것이었다. 여기서 리듬 앤 블루스는 우리가 근래 일컫는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블루스에 리듬이 들어가면서 음악은 슬픈 기조에서 매우 밝고 힘찬 음악으로 변모해갔다. 윌리 딕슨이란 작곡자가 1948년 유명한 시카고 블루스 연주자인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에 대해 한 말은 이 과정을 생생히 설명해준다. "주변에 블루스를 부르는 사람은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슬픈 블루스를 노래했다. 머디 워터스는 그 블루스에 원기(元氣)를 불어넣었다. 머디 워터스와 같은 아티스트에 의한 '활기찬 블루스'는 리듬 앤 블루스로 불리었다."

 

리듬 앤 블루스는 시간이 갈수록 더 템포가 빨라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 빠른 리듬 앤 블루스를 로큰롤로 일컬었다. 머디 워터스만큼 유명했던 블루스 연주자 하울링 울프(Howlin' Wolf)는 말한다. "12소절에 4소절의 도입부로 연주하면 블루스를 연주하고있는 것이다. 그것을 좀더 올려서 빠르게 했다면 당신은 로큰롤을 연주하고있는 것이다."

 

음악사가들은 일제히 흑인노예의 음악인 블루스를 뿌리로 로큰롤이 탄생했다고 정리한다. 그 사이에 리듬 앤 블루스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개념의 리듬 앤 블루스는 로큰롤화되어버리고 오늘날에는 시카고 아닌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지로 올라가 악기 없이 노래한 흑인들에 의해 발전되어온 보컬 흐름만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악기를 살 돈마저 없을 때는 입밖에 없다). 악기가 아닌 보컬로도 리듬은 얼마든지 구사할 수 있다. 이렇게 기타연주 아닌 보컬로 리듬 앤 블루스를 구사한 그룹으로는 코스터스(Coasters)와 드리프터스(Drifters)가 손꼽힌다. 이들에게는 가창력이 절대적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국내에서 R&B라는 장르가 표면화된 시점은 상기한 대로 솔리드가 떠오르면서부터였는데 역시 김조한이라는 걸출한 가창력의 소유자가 있었던 덕분에 성공했다. 부드럽지만 그만큼 섬세하고 통제된 노래솜씨가 요구되며 근자의 대표적 톱 가수인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의 이름만 떠올려도 얼마나 가창력을 요구하는 장르인지 알 수가 있다.

 

우리가 리듬 앤 블루스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이 시대에 잃어버린 가창력의 회복이다. 짙은 흑인냄새라는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댄스음악과 비주얼시대에서 대중가수의 기본인 노래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R&B는 변함 없는 관심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