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 

 

 

대중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던지는 질문이 '록이란 무엇인가?'이다. 어떤 음악을 록으로 정의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가장 원초적인 의문이다. 대부분은 로큰롤의 준말로서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드럼이라는 편성으로 연주하는 '전기증폭' 음악을 록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이러한 악기를 쓰지 않은 곡도 록의 범주에 들어가 혼동을 일으킨다. 하나의 예로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Imagine)'은 피아노반주로 이뤄진 곡임에도 불구하고 록의 명곡으로 사랑 받는다. 또 록 전문지를 보면 백인 뿐 아니라 흑인음악인 힙합 뮤지션도 자주 다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결코 외형적인 형태로 록을 규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20세기 후반을 점령한 젊은이들의 영원한 음악인 록에 대해 살피기로 한다.

 

록은 로큰롤이란 이름으로 1950년대 중반 탄생된 음악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록의 사운드가 이전과 달리 '전기증폭'에 의한 소리였다는 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악기는 일렉트릭 기타를 중심으로 베이스, 드럼, 보컬을 기본 편성으로 한다. 이 악기들에 의한 음악은 일단 록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악기 특성상 록은 원래가 밴드 성향을 지닌다.

 

초기 로큰롤 시대의 스타인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 리틀 리처드보다 1960년대의 비틀스나 롤링 스톤스가 더 록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것도 이들이 바로 밴드였기 때문이다. 사운드는 전기 앰프에 플러그를 꼽아 증폭하는 소리이므로 악기 음을 그대로 살린 어쿠스틱 사운드보다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지금에 와서는 1950년대 척 베리의 로큰롤 음악은 시시하게 들리지만 당시 어른들이 듣기에는 지저분한 소음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큰 소리는 당연히 기성세대가 아닌 젊은이들의 청각 감수성과 어울린다. 라디오나 TV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나올 경우 나이든 어른들은 다들 '소리 좀 줄여!'라고 한다. 반대로 젊은이들은 체질적으로 볼륨을 높여 음악을 듣곤 한다. 록은 소리를 낮추는 기성 세대와 달리 '소리 좀 높여!'(pump up the volume)가 하나의 규범인 셈이다.

 

큰 사운드는 또한 큰 동작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전에 조용히 마이크 앞에서 노래부르던 스탠더드 가수와 달리 록을 하는 사람은 이리저리 땀을 흘리며 흔들어댄다. 노래도 조용히 부르는 게 아니라 마구 질러댄다. 록의 가창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스탠더드 팝이나 고전음악에서 중요한 음감, 음정, 발성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움이다. 굳이 말하자면 가수 개인의 음색이 중시된다.

 

따라서 애초부터 록 가수들은 노래를 잘한다는 말을 듣기 어려웠다. 이전 음악들을 기준으로 하면 대부분이 '음정도 제대로 못 맞추면서 요란하게 떠들기나 하는' 가수들이었다. 노래부르기에서도 록은 이전에 확립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젊음 본연의 자유를 따르는 것임이 드러난다. 록은 곧 자유인 것이다.

 

록을 논할 때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자유는 또한 록을 하는 주체(主體)의 행위나 의식 전반에 걸쳐있다. 바로 '스스로' 하는 것이다. 어떤 밴드가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을 크게 울려대는 전형적인 록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더라도 만약 그들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돈과 출세를 위해 막강한 자본가나 후원자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면 실상 록을 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유명한 록밴드가 레코드회사의 입장(어떤 회사라도 앨범이 많이 팔리는 음악을 바란다)을 감안해 음악을 만든 것도 마찬가지이다.

 

곡 만들기를 보자. 대부분의 록 아티스트 또는 로커들은 곡을 밴드의 일원이, 즉 밴드 스스로가 만든다. 이 방식을 확립한 인물이 척 베리 그리고 비틀스였다. 이들 전의 스탠더드 가수들은 남이 만든 곡을 잘 부르기만 하면 되었다. 여기서 남이란 전문 직업작곡가들이었다. 대중들에게는 가수가 유명했지만 음반업계를 뒤흔든 세력은 어디까지나 이 작곡가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록은 작곡의 무게중심을 완전히 직업작곡가에서 록 뮤지션으로 바꿔놓았다. 주체의 대이동이었다. 이랬으니 작곡가들이 록에 대해 좋은 감정을 품고 있을 리 없다. 1950년대 말 미국사회를 뒤흔들었던 패욜라(payola) 스캔들, 이를테면 방송 프로듀서와 디스크자키들이 돈을 받고 음악을 틀어준다고 해서 물의를 일으킨 사건도 실은 로큰롤에 호의적인 방송국에 대해 직업작곡가들이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터뜨린 공세였다.

 

이를 보더라도 록은 '내가 만들어 내가 부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록은 어떤 사운드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다. 그 정신은 당연히 형식을 강요하는 제도권이나 과거의 가치를 신봉하는 기성세대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록의 '저항성'이 솟아오르게 되었다. 전쟁과 인종차별에 덤벼든 1960년대 히피들의 사이키델릭 록은 록의 저항성을 상징하고있다.

 

록 잡지에 흑인 뮤지션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본다. 장르로 분류하면 그들은 소울, R&B 아니면 힙합에 해당될 테지만 록의 범위에서 언급되곤 하는 것은 잡지 편집진이 그 흑인 아티스트가 어떤 도전과 자유정신을 지닌 인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록은 같은 반항성을 내포하거나 드러내는 힙합과의 사이가 매우 가깝다. 저항의 동지라고 할까. 1990년대 미국 젊음의 제전인 롤라팔루자 공연이나 우드스탁 25주년 공연에 록 밴드와 흑인 랩 가수들이 함께 자리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록은 본래가 저항성이 내재된 음악이다. 흔히 로큰롤을 흑인음악 블루스와 백인음악 컨트리가 만나 생성된 것이라고 하지만 역사는 그 원류가 엄연히 블루스임을 말해준다. 로큰롤이란 용어부터가 흑인들간의 성행위를 가리키는 속어였다. 1960년대 말에는 영미 음악계에 대대적인 블루스 붐이 불었다. 백인들이 흑인 블루스를 노래한 것이다. 백인 여성 재니스 조플린도 에릭 클랩튼도 그랬다. 이들은 록이 백인판 블루스(white version of black blues)임을 실증했다.

 

그런데 블루스를 만들어낸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미국의 흑인노예들이다. 여기서 록을 과연 누가 하느냐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예신분의 흑인 블루스에서 발전해온 것이 록이라면 록을 하는 사람들도 그 사회에서 억눌린 층, 소외된 층과 관련을 맺을 것이다. 이러한 하층계급 젊은이들이 토해내는 독이 다름 아닌 록이다.

 

그래서 록은 집안이 부자이거나 교실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별로 인연이 없다. 태생적으로 가진 자, 배운 자의 음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들을 조롱하거나 그들이 주도하는 사회에 가담하지 않으려는 음악으로서의 입장이 록이다. 서구 록밴드 멤버들의 학력이 대부분 고교 중퇴 또는 고졸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점에서는 낙오자들이다. 록은 그래서 낙오자의 예술로 규정되기도 한다.

 

이 부분은 1970년대 말을 휘몰아쳤던 펑크(punk) 록과 1990년대 초반을 강타한 얼터너티브 (alternative) 록에서 분명해진다. 대표적 펑크 그룹인 섹스 피스톨스와 얼터너티브의 화신인 너바나는 그 멤버들이 교실의 장학생과는 거리가 먼 거리의 청년들이었다. 이들이 음악이 극도의 분노와 좌절을 드러내는 것은 신분과 환경에서 너무도 열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낙오자들이 패배로 주저앉지 않고 사회에 충분히 충격파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공부 잘한다고 해서 록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억압과 소외층과 같은 분노를 진정으로 품고있어야 한다. 록 밴드를 취미 삼아 결성한다거나 괜히 멋있게 보여서 기타를 잡는다면 곤란하다. 이런 사람들이 록을 하게 되면 진정으로 록을 해야 할 사람들이 설자리를 잃게 된다. 근래 록 무대는 우등생에 의해 점령된 느낌이 없지 않다.

 

록은 그러한 '스타일'이 아니라 차별과 푸대접에 도전하는 '정신'이다. 바로 이 정신이 록을 20세기 최대의 대중음악으로 끌어올렸다. 지금도 록이 막강하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임은 반항하는 소외된 청춘은 언제 어디에서나 있는 까닭이다.

 

록은 소외된 젊음의 주체적 사운드이며 그래서 폭발하며 모순된 사회에 저항하는 음악이다. 줄여서 정의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록은 젊음의 폭발적 저항의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