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egazing / Dreampop

 

 

슈게이징(shoegazing)은 1980년대 중 후반, 영국 인디 신에서 똬리를 튼 음악 스타일이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신발(shoe)을 바라보며(gazing) 연주하는, 혹은 감상하는 라이브 풍경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또한 그것은 드림 팝(dream pop)이라고도 불린다. 특유의 나른하고 몽환적인 사운드 풍광, 즉 꿈에서 막 깬 듯 맥아리 없이 흐릿한 보컬 톤과 백색 소음의 기타 사운드를 결합시켜 최면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까닭이다. 따라서 록 스테이지 특유의 광폭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정통 록 카테고리에서 저만치 벗어난 스타일인 셈이다.

 

일반적인 록은 '남근(男根)'의 음악이다. 불끈불끈 파워가 느껴지는 기타 리프(록 담론에서 남근에 자주 비유되어 왔다.)와 넘치는 볼륨감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보컬, 그리고 근육질의 남성미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 록 드럼만이 갖는 특수성인 백 비트(back beat) 역시 근을 만들어내는데 크게 일조한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딥 퍼플(Deep Purple) 등, 1970년대의 클래식 록을 떠올려보면 대번에 감지된다.

 

반대로 슈게이징/드림 팝은 근과 힘이 전연 없다. 노이즈 다발인 드론 소리가 그저 이리저리 떠돌다 구심점 없이 무한히 해체되는 소리 메커니즘이자 경계를 두지 않고 그저 뻗어나가는 화학적 사운드 텍스처다. 노이즈가 짙게 깔린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랄까. 소장 록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이를 두고 “리프는 정통 록 음악과는 전혀 다른 텍스처와 동학(動學) 속에서 완전히 소멸된다. 그것은 남근적 록 음악의 대립물이지만 그것들 모두를 록 음악으로부터 빼앗아 와 남김없이 비워버린다”라며 말했다. 또한 리프와는 대조적으로 노이즈가 '질'에 대한 은유로 자주 사용되어 왔음을 떠올린다면 슈게이징/드림 팝이 지극히 여성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허나 드림 팝 뮤지션들은 노이즈 아방가르드인 소닉 유스 계열과는 또 다르다. 정통 록 구조의 완전 해체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소닉 유스와는 달리 슈게이징 아티스트들은 대중적 곡조를 고스란히 유지한다. 그렇지 않다면 '팝'이라는 단어가 굳이 드림의 뒤를 받쳐 줄 이유가 없다. 즉, 그들은 소리의 원단 위에 향기를 내뿜는 소음 스모그를 분사, 본질을 가리고 은폐하는데 역점을 둔다. 자연스레 모든 음의 실체는 불분명해져 듣고 파악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낳는다.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파트를 구분하며 감상하는 행위는 곧잘 무의미해진다.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던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와 '노이즈의 장벽'을 실험했던 지저스 앤 메리 체인(The Jesus And Mary Chain)이 그 선구자로 언급되어진다. 1970년대 말부터 활동을 시작했던 두 밴드는 각각 <보물(Treasure)>(1984)과 <사이코캔디(Psychocandy)>(1985)를 발표하며 드림 팝 후배들을 위한 음의 기초 조각상을 세웠다.

 

따라서 1991년의 마스터피스 <사랑없는(Loveless)>으로 단숨에 드림 팝 필드를 평정했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은 둘의 '종합 버전'인 셈. 상기한 슈게이징의 음악 파일들을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뮤직 월드에서 모두 맛볼 수 있다. <얼터너티브 프레스>지는 1989년의 또 다른 걸작 <아무 것도 아니야(Isn't Anything)>과 <사랑없는>을 두고 “록 음악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며 표현했고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는 그들의 시그니처 송 'Soon'을 듣고 “팝 음악의 뉴 스탠다드를 확립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혁신적 업적 이후 1990년대에 수많은 단체들이 그 열차에 동승했던 것은 당연지사. <노웨어(Nowhere)>(1990)의 라이드(Ride), <소우블라스키(Souvlaski)>(1993)의 슬로우다이브(Slowdive), <스플리트(Split)>(1994)의 러시(Lush), <신사 숙녀 여러분들, 우리는 우주를 부유 중입니다(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1997)의 스피리추얼라이즈드(Spiritualized),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Things We Lost In The Fire)>(2001)의 로우(Low) 등이 연이어 출현해 슈게이징을 인디 록 신의 센트럴 파크로 우뚝 세웠다.

 

보통 드림 팝의 역사적 의의는 두 가지로 평가된다. 우선 하나는 당시 징글 쟁글한 댄스 기타 팝(후에 매드체스터로 수렴되어 영국을 평정했다.)만이 판을 쳤던 영국 인디 록 신에 다양성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그것이 앞서 설명했듯, 남성성이 지배해왔던 록 계의 고착화된 사운드 패턴에 대대적 사고 전환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또한 드림 팝은 이후 브릿팝 태동에 결정적 한 축을 담당하며 인디라는 자그마한 인큐베이터에서 발흥했음에도 불구, 후세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