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앤 블루스와 그 뿌리 (1)


리듬 앤 블루스는 현대의 팝 음악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장르이다. 특히 9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리듬 앤 블루스에 뿌리를 둔 블랙 뮤직의 파워는 팝게의 메인 스트림으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리듬 앤 블루스(Rythmn Blues)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또 그 뿌리에서 어떤 변천을 거쳐 리듬 앤 블루스가 태동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려 한다. 다루려고 하는 부분을 간략하게 말한다면, 서부 아프리카의 토속음악, 영가, 가스펠, 블루스이다. 리듬 앤 블루스의 뿌리가 되는 음악들을 살펴봄으로써 리듬 앤 블루스라는 장르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 리듬 앤 블루스의 근원이 되는 서부 아프리카의 토속음악과 영가에서부터 리듬 앤 블루스의 거대한 뿌리를 더듬어 본다.

 

 

1. 서부 아프리카 토속음악

 

아메리카 대륙에 노예를 공급하던 백인 노예사냥꾼들은 주로 아프리카 서해안을 사냥터로 택했다. 특히 '상아 해안'이라 불리는 곳이 주사냥터였다. 이때 노예 사냥은 사냥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보이는 데로 잡아서 실었다는 것이 표현이 옳을 것이다. 이때 잡혀간 사람들 중에서는 그곳에서 음악을 하던 흑인들도 있었다.


음악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밝혀 낸 바에 따르면 아프리카 토속음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의 음악은 생활 음악이다. 우리말로 쉽게 하자면, '노동요'라고 할 수 있다.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 사냥하면서 부르는 노래, 식사 준비하면서 부르는 노래 등이 그것이다.


둘째, 

그들의 음계는 서양음악의 기준으로 5음계(Pentatonic)로 이루어져 있다. 부족들간의 미세한 차이는 존재하지만 대체적인 경향이 5음계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음악학자들이 유추해낸 음계는 C, Eb, F, G, Bb (도, 미b, 파, 솔, 시b)이다.


셋째,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부름과 응답(Call Response)'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리더가 어떤 부분을 선창을 하면 다른 이들이 뒤에서 코러스를 노래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음악에서는 싱코페이션(Syncopation)이 자주 발견된다. 서양음악에서는 한 마디 안에서 강세(Beat)가 처음에 오는 것이 상식이다.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우는 '강-약-중간-약'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면 전체적으로 엇박자 효과-시작에서 한 박자나 반 박자를 쉬고 들어가는 경우를 연상하면 도움이 된다-와 함께 뒤로 음을 끌어당기며 앞의 음들을 흘려 떨치는 효과를 가지고 오게 되는 것이다.


실제 사용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단순하게 2박자와 4박자에 강세를 주어 1박자와 3박자를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이 하나이고, 1박자의 음과 3박자의 음을 나누어 2박자와 4박자에 할당하는 방법을 통해 강세를 옮기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재즈에서는 후자의 방법이 많이 발견된다. 특히 스윙 필(Swing Feel)을 표출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쉽게 말해 일반적인 서양음악의 박자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이런 박자는 서양음악에서는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효과를 주기 위한 것은 존재했지만, 아프로-아메리칸의 음악처럼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지금 우리가 즐기는 아프로-아메리칸의 음악들이 보여주는 특성들과 매우 유사하며, 그 특성들이 아프로-아메리칸 음악을 하나의 줄기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을 지닌 아프리카 토속 음악이 미 대륙에 건너와 백인들의 문화 속에 스며들면서, 그들 자신의 전통적인 음악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양산해 내게 되는 것이다. 


서부 아프리카 토속음악의 성격이 리듬 앤 블루스에 남아있기에 뿌리를 여기에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리듬 앤 블루스에만 아니라 모든 아프로-아메리칸 음악이라고 불리는 음악은 위에서 열거한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는 노예사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2. 영가(Spiritual)

 

미국 남부의 비옥한 땅에서 힘든 노역에 시달리던 노예들은 자신들이 고향에서 부르던 여러 가지 노동요를 불렀다. 백인들의 눈에는 흑인들이 미개한 동물로 보였겠지만, 흑인들에게는 자신을 사냥하여 막노동에 동원한 백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야수로 보였을 것이다.


여기에 기독교가 흑인들 사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기독교가 흑인들의 고된 삶을 위로하는 수단이 되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백인들이 효과적으로 노예들을 다루기 위한 수단으로 흑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는 것이다. 흑인들이 기독교를 믿기 시작하면서 영가가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영가의 형태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여러 학자들이 영가에 대해서 다루기는 했지만, 확실하게 밝혀낸 학자는 없는 형편이다. 당시 거의 모든 흑인들이 악보를 적을 줄을 몰랐고, 다른 이들도 영가의 음악적인 측면에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음악적 형태와 요소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노래의 내용이나 분위기에 대한 기록들은 남아 있다. 대부분 구전이나 구전을 채록한 것들이다. 어쩌면 아마도 흑인들 스스로 노예시절을 기억하기 싫어서 이렇게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겠다.


영가의 내용은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앙심을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맹목적인 소박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또한 당시의 영가들은 성대와 흉부, 복부를 모두 활용하는 테크닉을 사용하여 노래를 불렀으며, 리더와 코러스가 양분되는 부름과 응답의 형식을 이루고 있었다.


영가는 노동요적인 성격이 강한 노래다. 서부 아프리카 토속음악에서 부름과 응답의 형식이 그대로 사용된 것을 보면 뚜렷이 노동요적인 성격을 유추해낼 수 있다. 영가는 교회에서 불려지기보다는 주로 일하면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당시 영가를 노래하던 이들 중 뛰어난 몇몇은 음유시인처럼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며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사는 경우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혼자서 불려지는 경우라 해도 /리더가 부르는 부분과 코러스 부분의 양분현상은 여전히 남았다.


하지만 이러한 영가는 흑인들 자신이 수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그 형태를 정확히 추정해 내기에 자료가 턱없이 모자란다. 대부분 구전이나 그러한 구전을 채록한 것들이 유일하게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이라 연구에 많은 제한이 따른다. 기껏해야 노래 내용이나 분위기 정도만 겨우 남아 있는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