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후반에 재즈를 대립적인 두 진영으로 나누었는데, 이 말은 이 음악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2음으로 된 스타카토 악구를 의성어로 만든 데에서 유래했다. 이 음악은 처음에는 일반 청중뿐 아니라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결과 나타난 첫째 구(舊)악파와 신(新)악파 사이의 균열과 2번째로 재즈 음악가와 청중 사이의 균열이 상당히 깊었고 이중 2번째 균열은 아직도 완전히 치료되지 않고 있다.

 

이전의 재즈가 본질적으로 온음계(서양의 전통 장조·단조 7음계에 기초해서 선율과 화성을 쓰는 방식)적이었던 반면에 새로운 운동을 전파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즈를 반음계(반음계의 12개 음을 모두 사용하는 방식)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새로운 재즈 독주자들에게 알려진 화성의 영역은 끝없이 확대되었다. 비밥은 옛 재즈의 화성을 취하여 이것에다 부가적인 '대리'화음들을 덧붙였다. 또한 비밥은 드럼 연주자의 리듬에서 메트로놈의 규칙성을 깨뜨렸고, 2명의 독주자가 동시에 연주하게 하거나 여러 마디에 16분 음표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그결과 복잡한 즉흥 연주의 효과가 만들어졌다. 비밥 운동은 1940년대에 트럼펫 연주자인 디지 길레스피, 기타 연주자인 찰리 크리스천, 피아니스트인 몽크, 드럼 연주자인 케니 클라크 등의 연주로 시작되었다. 특히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알토 색소폰 연주자였던 찰리 '버드' 파커였다.

 

하드 밥 또는 펑키라 알려진 후기 비밥 양식은 가스펠 음악과 리듬 앤드 블루스에서 발전했으며, 그 음악의 요소들을 흡수했다. 이 시기에는 특히 호레이스 실버가 대표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악단의 리더로 활약했다. 또다른 하드 밥 캄보(3~8명으로 편성된 재즈 악단)의 리더로는 캐논볼 애들리와 아트 블래키를 들 수 있다.

 

글 출처 : 다음 백과